[미성샘의 시가 있는 교실 (2)]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중학생이 되면 아이들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 바로 평균의 ‘숫자’와 과 성취도의 ‘기호’로 가 가득한 성적표다. 초등학교 때는 ‘도달·미도달’ 정도로 표현되던 평가가 이제는 냉정한 점수와 등급으로 바뀐다. 그에 따라 아이들은 자신의 가치가 결정된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 아이는 수업 시간에 늘 집중하고 자기 생각도 잘 표현하는 성실한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도종환 시인의〈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를 찾아와 소개할 때는 표정이 평소보다 어두웠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도종환〈흔들리며 피는 꽃〉중에서.
시 낭송이 끝나고, 아이에게 왜 이 시가 마음에 와닿았는지 물었다. “영어학원에서 단어 시험을 쳤는데 점수가 안 좋아서 많이 속상했어요. 그런데 이 시를 읽으니까 모든 사람이 힘든 일을 겪으면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소개하게 되었어요”
필자는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점수를 물어봐도 되냐고 했다. 아이는 잠시 망설이더니 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단어 시험 70개 중에 50개밖에 못 적었어요.”
그 순간 반 아이들은 모두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면 잘 친 거 아니야?” “나는 20개도 못 맞힌 적 있는데…”
교실 구석에서 작은 소리들이 들려왔다. “얘들아,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수 있잖아. 이 친구는 노력한 만큼 결과가 안 나와서 속상한 거야.”
교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필자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럼 이런 경우에는 친구에게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나보다 잘했네~ 라고요.” “음, 그 말은 친구를 기분 좋게 할 수는 있지만 말하는 사람은 비교당하니 속상하지 않을까?”
“그럼 ‘네 입장에선 속상할 수 있겠다’ 이 말은요?”
“오! 좋다~” 아이들이 먼저 반응해 주었다.
“얘들아, 시에서 ‘흔들린다’‘젖는다’고 한 것은 어떤 의미일까?” “힘든 일 겪는 거요.”, “실패나 좌절”, “눈물 흘리는 거요.” “그래, 맞아. 그럼 이 시에서 시인이 정말 이야기하고 싶은 건 뭘까?” 아이들의 눈빛은 점점 진지해졌다. “꽃처럼 사람도 힘들 때가 있지만 포기하지 말라는 뜻 같아요.”그래, 샘도 그렇게 느꼈어.”
“나도 수학 시험을 못 쳐서 속상했는데 이 시로 조금 위로를 받았다.”
“그동안 나는 우는 게 부끄러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시에서 젖는다는 것이 울어도 된다는 것처럼 느껴져 큰 위로가 됐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나도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인생에 고난과 역경이 없으면 좋겠지만 없으면 안 되는 것. 불행이 있기에 행복이 있고 인생의 가치가 있다.”
“얘들아, 만약에 시인이 직접적으로 ‘사람들아,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아라.’라고 썼다면 어땠을까?”
“에이~ 너무 뻔할 것 같아요.” “마음에 안 와닿을 것 같아요.”
“그렇지? 그게 바로 비유의 효과야. 꽃도 바람과 비를 맞으면서 피는 것처럼, 사람도 힘든 일을 겪으면서 성장한다는 것을 감동적으로 깨닫게 해주는 거지.”
중고등학교의 시험 기간이면 수업 시간에도 이전보다 미묘한 긴장감이 돈다. 긴 명절 연휴도 아름다운 가을 하늘도 무거운 가방을 맨 아이들에겐 무의미하게 느껴질 것이다.
성적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있다. 어려움을 견뎌내는 인내, 실패 속에서도 배우려는 의지, 눈물 흘리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용기. 주변에 감사하는 마음.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 곁에서 알려줄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흔들리고 젖으면서도 결국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자신만의 시간에 맞춰 결국 멋진 사람으로 자라날 것이다. 크고 작은 시험의 흔들림 속에서 더 단단해지고, 그 눈물 속에서 더 깊어지는 것이 바로 성장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김미성 외솔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