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 덕산그룹 명예회장, “나는 이정표 없는 길 걸었지만…후배들 위해 표지 세우고파”

2025-10-27     오상민 기자

덕산을 울산 향토기업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이준호 덕산그룹 명예회장이 두번째 저서 <이정표를 세우다>를 지난 24일 출간했다. 2023년 펴낸 <이정표 없는 길을 가다>의 후속편으로, 창업 1세대 기업가로서 50여년간 산업 현장에서 쌓은 통찰과 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작품이다.

첫 책이 벤처 1세대의 도전과 실패, 성공의 궤적을 담은 회고록이었다면 이번 저서는 그 과정을 통해 얻은 교훈을 후배 세대와 나누기 위한 메시지다. 이 명예회장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정표 없는 길을 걸어왔지만 이제는 후배들이 참고할 표지를 세워두고 싶었다”고 집필 의도를 밝혔다.

이 회장이 꼽은 경영의 핵심 개념은 ‘향상지심’(向上之心)이다. 위를 향한 마음, 곧 멈추지 않는 성장의 의지다. 현실에 안주하는 기업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한번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목표를 세워 변화를 이끌 때 기업은 생명력을 얻는다는 것이다. 창업 초기 불모지였던 소재산업에 뛰어들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분야에서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한 것도 이런 신념의 산물이다.

그는 경영의 출발점을 ‘사람’으로 본다. 규모의 크고 작음을 떠나 리더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구성원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고 했다. 조직이 한 방향으로 같은 목표를 향해 힘을 모을 때 비로소 성장의 동력이 생긴다고 믿는다. 리더는 명령하는 보스가 아니라, 앞서 실천으로 이끄는 존재여야 한다는 철학이다. 평소에도 임직원들에게 ‘혁신을 멈추지 말라’는 당부를 자주 전한다. 위기 때 기업을 지켜주는 힘은 평시의 학습과 준비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에서다.

그의 리더십 철학은 한비자와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사상에도 닿아 있다. 특히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언급한 포르투나(Fortuna·운)와 비르투(Virtu·역량) 개념을 현실 경영에 접목했다.

운에 기대지 않고 철저한 준비와 노력으로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는 교훈이다. 그는 “노력의 영역을 넓힐 수록, 노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운의 영역은 좁아진다”며 위기 속에서도 학습을 멈추지 않는 리더만이 조직을 지탱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경영관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한 손에는 주판을, 다른 손에는 논어를’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영가 ‘시부사와 에이이치’로부터 영향을 받아 ‘계산과 윤리, 실리와 도덕의 조화’를 중시했다. “돈이 된다고 해서 다 옳은 일은 아니며, 윤리와 투명성을 잃은 이익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확신이 덕산그룹의 정도·책임·투명 경영 원칙의 근간이 됐다.

울산 토박이인 그는 고향을 ‘기회의 땅’이라 부른다. 자동차·조선·석유화학이 어우러진 산업구조와 탄탄한 기술 인프라, 숱한 위기 속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지역 경제 체질이 기업가에게 든든한 기반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수도권이 강세인 반도체·디스플레이·방위산업까지 덕산그룹은 사업을 확장했지만, 여전히 본사를 울산에 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울산은 산업 생태계가 견고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협력망을 구축하기에 더없이 좋은 도시”라고 전했다.

젊은 세대에게는 배움을 멈추지 말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모든 사람에게는 배울 점이 있다)라는 신념을 평생 실천해왔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배움이 결국 삶을 바꾸는 힘이라는 확신이다.

아울러 이준호 덕산그룹 명예회장은 “기업 경영에서 얻은 지혜는 삶 전반에도 통한다”며 “이정표 없는 길을 걸으며 깨달은 경험이 울산의 젊은 후배들에게 작은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고 마음을 전했다. 글=오상민기자 sm5@

사진=김경우기자 woo@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