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기계는 멈추지 않지만, 사람은 없다

2025-10-28     오상민 기자

조선소와 자동차 공장을 품은 울산은 숫자만 보면 괜찮은 도시다. 실업률은 전국 최저권이고, 취업자 수는 오히려 늘었다. 하지만 공단에선 ‘사람이 없다’는 말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린다. 통계는 완전고용을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고령화와 비정규직 확산, 사라지는 젊은 노동력이라는 구조적 균열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청년층은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고, 남은 일자리는 노인 일자리와 공공형 단기 근로가 대신한다. 수치는 회복됐지만, 산업의 체온은 낮아지고 있다.

울산의 제조 현장은 이제 나이 든 노동자들이 버티는 구조다. 용접 불꽃이 튀는 조선소의 좁은 통로에도 흰머리가 늘었고, 중소 공장의 작업복에도 세월이 묻어 있다.

청년이 떠난 자리는 단순히 인력의 공백이 아니다. 새로운 아이디어, 혁신의 씨앗, 미래의 가능성 자체가 함께 빠져나간다.

고령화된 노동력만으로는 기술 변화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생산은 유지해도 혁신은 멈췄다”는 자조가 나온다. 울산의 산업이 여전히 돌아가고 있지만, 미래를 향해 가속하는 대신 관성으로 움직이는 느낌이다.

이런 현상은 중소기업에서 더 뚜렷하다. 사람을 구하지 못해 기계 가동을 멈추는 업체가 늘었고, 숙련공의 은퇴로 품질 유지조차 버거운 공장도 있다. 한 제조업체 대표는 “사람이 없으니 일을 줄일 수밖에 없다. 젊은 직원이 들어와도 1~2년 버티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기술의 맥은 끊기고, 시장의 신뢰도는 점점 흔들리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구조가 점점 굳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층의 탈울산은 고령화를 가속하고 고령화는 다시 청년층의 정착을 어렵게 만든다. 기업은 사람을 구하지 못해 자동화 설비에 투자하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일자리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사람이 없어 기계를 늘리고, 기계가 늘어나니 사람은 더 떠난다’는 말이 현실이 되는 셈이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이제는 기술보다 사람이 경쟁력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없다”며 “기업 지원도, 산업정책도 결국은 일할 사람을 붙잡는 게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하소연 같지만 울산 산업의 현주소를 정확히 짚은 말이다. 30년 뒤의 울산을 그려본다.

여전히 조선소와 자동차 공장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안을 채울 사람, 기술을 잇고 산업을 움직일 사람이 없다면 울산의 ‘산업’은 껍데기만 남는다. 청년과 중소기업이 떠난 산업수도는 더 이상 산업의 수도가 아니다.

오상민 정치경제부 기자 sm5@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