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금 칼럼]‘벌어진 악어 입’과 세대 간 정의
흔히 심각한 병일수록 소리 없이 찾아온다고 한다. 평소에는 모르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냈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돼 있는 것이다. 급격히 늘어만 가는 우리나라 국가부채 이야기다. 이를 구체적인 통계수치로 살펴보자.
정부가 발표한 ‘2025~2029년 중기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2025년 1302조원에서 2029년 1789조원으로, 4년간 487조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역대 최대의 확대 재정을 도모했던 문재인 정부의 404조원을 능가하는 수치다. 이 결과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25년 49.1%에서 2029년 58%로 8.9%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같은 기간 독일(7.1%), 미국(4.5%), 영국(2.6%), 이탈리아(0.4%) 등보다 훨씬 더 가파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우리나라 재정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일본 재무성은 이러한 현상을 ‘벌어진 악어 입’으로 설명한다. 악어 입은 국가재정 위기를 경고하는 상징적 표현이다. 즉 재정수입(아래 턱)은 계속 줄어드는데 재정지출(위턱)은 급격히 늘어나 그 차이가 시간이 갈수록 커져서 그래프로 그리면 마치 악어가 입을 크게 벌린 것과 같은 모습이 나타난다. 그 차이는 결국 국가부채로 메워 나갈 수밖에 없다.
앞의 통계에서 본 것처럼 한국은 이미 벌어진 악어 입 속에 들어가 있다. 재정확대를 공언하고 있는 이재명 정부에서 악어 입은 더욱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덩달아 국가채무도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다. 이로 인한 모든 부담은 결국 다음 세대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현세대의 행복을 위해 미래세대를 희생시키는 것이다. 지금의 청년 세대는 필연적으로 엄청난 조세부담을 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제공받는 공공서비스 수준은 지금보다 형편없이 낮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국가재정이 파탄된 남미 국가의 국민들처럼 빈곤에 허덕이며 세계를 떠도는 비참한 난민이 될 수도 있다. 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가 제시한, ‘각 세대는 다음 세대가 최소한 자신들과 같은 수준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사회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는 ‘세대 간 정의’(intergenerational justice) 원칙을 완전히 위배하는 것이다.
‘악어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서는 지출은 줄이고 수입을 늘려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이 재정준칙을 도입하는 것이다. OECD 국가 중에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튀르키예 뿐이다. 재정준칙은 무분별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국가채무비율 등을 법으로 정하고 이를 의무적으로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확장재정 기조를 유지하면서 재정준칙이라는 용어 자체의 언급을 꺼리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는 국가채무를 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는 셈이다. 맘만 먹으면 아무런 제약 없이 언제든지 재정확대를 도모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다음으로 현금성 지출을 줄여야 한다. 단기적 포퓰리즘에 기반한 현금지원은 기대하는 경제적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거의 재정낭비에 불과할 뿐이다. 재정지출이 단기적 소비에 치우치면, 미래의 성장잠재력과 세수 기반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만일 이를 교육·기술·인프라 같은 생산적 분야에 대한 투자로 활용한다면 미래세대에도 혜택을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또 소상공인이나 저소득층에게 집중 지원한다면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시적인 정치적 효과를 누리기 위해,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와 미래세대를 희생시키는 ‘현금 살포’는 중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람들은 경제문제에 관심은 많아도 국가재정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둔감한 경우가 많다. 여러 통계 수치를 보면서 해석을 해야 하고, 어디에 써야 하는지도 판단이 잘 서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단위가 비현실적으로 클 뿐만 아니라 먼 미래를 포함하고 있어서 현실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국가재정은 현세대뿐만 아니라 미래세대의 명운을 좌우하는 요인이므로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정부도 현금 지원 위주의 단기적 포퓰리즘 정책은 가급적 자제해야 한다. 일시적으로 쥐는 현금의 달콤함에 빠져 다음 세대의 행복을 망쳐서는 안 된다. 악어의 입이 더 이상 크게 벌어지는 것은 막아야 한다.
정준금 울산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