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의 더불어나무(44)]청량읍 율리의 모과나무
봄이면 초록 잎 사이로 연분홍 꽃이 피어난다. 꽃이 예쁘니 가을 열매도 기대되지만, 막상 모과는 울퉁불퉁하고 투박하다. 한입 베어 물면 딱딱함에 놀라지만, 향기만큼은 집 안 가득 퍼져 방향제가 따로 필요 없다. 보는 나무보다 향으로 기억되는 나무, 바로 모과나무다. 노란 참외를 닮았다 하여 ‘모과’라 전해진다.
울주군 청량읍 율리 영축사지 인근, 아랫말저수지 옆(율리 884번지)의 한 나무농장에는 이런 모과의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목이 있다. 경남 밀양에서 옮겨온 이 나무는 뿌리둘레만 3.2m다. 농장주는 약 350년 된 나무로 추정한다. 수피는 뱀 비늘처럼 촘촘하게 갈라져 젊은 나무와는 외형이 확연히 다르다.
지난 주말 현장을 찾았을 때, 나무 아래에는 떨어진 열매가 가득했다. 또 가지마다 노란빛 모과가 여전히 달려 있었다. 농장주는 “사람이 관리받아야 건강하듯, 나무도 꾸준한 손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농장에는 40그루의 모과나무와 함께 소나무, 소사나무, 산수유 등이 어우러져 정원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조용한 바람 사이로 모과 향이 묻어나와 발걸음을 한 번 더 멈추게 했다.
그는 모과나무가 꽃·열매·향기를 모두 갖춘 정원수임에도, 가치가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그래서 전정과 관리를 통해 ‘모과나무다운 수형’이 되도록 가꾸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시민들에게 정원 공간을 개방할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단순히 ‘볼거리’가 아니라, 머무를 수 있는 쉼터이자 배움의 공간으로 키우고자 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울산에서 여러 그루의 모과나무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장소는 흔치 않다. 이 나무들이 지역의 자연 자산으로 보전되고, 앞으로 잘 활용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자연은 돌보는 만큼 되돌려준다는 사실을, 오래된 모과나무가 조용히 보여주고 있다는 듯한 가을날이었다.
윤석 울산시 환경정책과 주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