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소영의 기후2050]한파경제학
찬바람이 출렁이며 기온이 급격히 요동치고 있다. 예년 같으면 9월 하순쯤 물러났을 덥고 습한 여름 공기가 올해는 10월 상순까지 버티며 찬 공기의 남하를 막았다. 늦가을 날씨가 이어지다 갑자기 찬 공기가 급습하면서 기온이 11월 하순 수준으로 떨어졌고, 경기 북부와 강원 산간 등에는 올가을 첫 한파특보가 발령됐다. 2001년 한파특보 운영 이후 10월에 한파특보가 내려진 것은 다섯 차례뿐이다.
이렇게 가을이 짧아지고 초겨울이 앞당겨지는 현상은 단순한 계절 변화가 아니다. 북극의 온난화 속도가 전 지구 평균의 두 배에 달하면서 찬 공기를 붙잡던 제트기류가 약해지고, 그 틈으로 북극 냉기가 남하한다. ‘따뜻해진 북극이 오히려 더 추운 겨울을 만든다’는 역설적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른 한파가 단순한 추위를 넘어 국가 에너지 시스템을 뒤흔든다는 점이다. 전력거래소 통계에 따르면 겨울철 기온이 1℃ 하강할 때마다 전력 수요는 약 70만㎾ 늘어난다. 원전 1기 용량의 70%에 해당한다. 2023년 1월 서울의 아침 기온이 -8℃로 떨어졌을 때 하루 만에 전력 피크가 500만㎾ 증가했는데, 원전 4기 분량이었다. 한파는 난방 수요를 폭증시키는 동시에 효율성도 떨어뜨린다. 히트펌프나 공기열 난방기는 외기 온도가 영하 10℃ 이하로 떨어지면 효율이 절반 수준으로 감소해 같은 난방에 두 배의 전력이 필요하다. 송전선의 열손실까지 커져 공급 효율도 낮아진다.
냉방과 난방은 모두 전력난을 유발하지만, 에너지 수급 구조는 다르다. 폭염 시 냉방은 에어컨 등 전기 기반 기기 사용으로 인해 전력 단일 체계의 수요가 집중된다. 반면 한파 시 난방은 전기뿐 아니라 도시가스(LNG), 지역난방(열병합), 석유보일러 등 다양한 열원이 동시에 가동되며 전력·가스·열 공급망 전체가 압박받는 복합 에너지 피크 현상을 만든다. 특히 LNG 수입 의존도가 90%가 넘는 우리나라는 한파로 인한 국제 가스 가격 급등이 전기·가스요금 인상으로 직결돼 에너지 인플레이션을 불러온다. 결국 한파는 국경을 넘어 에너지 비용과 물가를 동시에 끌어올리는 강력한 경제 리스크다.
한파 예보의 정확도는 곧 국가 에너지 안보와 직결된다. 실제보다 덜 춥게 예보하면 전력 예비율이 부족해지고, 반대로 지나치게 춥게 예측하면 불필요한 발전 가동으로 비용과 탄소 배출이 늘어난다. 기상청이 AI와 슈퍼컴퓨터로 극한 기후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는 이유다. 한파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선 수요 관리를 강화하고, 노후 건물의 단열 성능 향상과 시간대별 요금제 도입으로 난방 부하를 줄여야 한다. 혹한기에는 도시가스·지역난방 등 비전력 열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할 저장장치(ESS)를 확충해야 한다.
기후위기의 시대, 한파는 더 이상 계절 뉴스가 아니다. 기온 1℃의 변화가 국가 에너지 수급과 물가, 산업, 그리고 우리의 일상을 좌우하는 시대다. 한파를 ‘기후 리스크 자산’으로 보고 금융 대응과 예측 기술을 결합한다면, 추위도 위기가 아닌 혁신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맹소영 기상칼럼니스트·웨더커뮤니케이션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