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 첨병, 울산문화예술인]“작품이 누구에게든 영향을 끼친다면 영광”
2025-10-30     차형석 기자
			◇7년만에 개인전…2016년부터 준비
지난 27일 울산 울주군 범서읍 구영리의 한 건물 3층에 자리잡은 약 230㎡ 규모의 개인 작업실. 김봉석 울산미술협회장의 아호 석흠(石欠)을 따 ‘석흠실’로 명명된 이 곳의 한 켠에는 작은 갤러리가 꾸며져 있었다. 그는 이 곳에 다음주 시작되는 개인전을 앞두고 전시회에 선보일 작품 일부를 전시해놓았다. 그만큼 이번 개인전에 대한 그의 생각과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김봉석 회장의 개인전은 2018년 이후 7년만이다. 2003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개인전(초대전 2회 포함)만 총 15회로, 약 1년마다 열었던 것에 비춰볼때 상당히 긴 시간 휴지기를 가졌던 셈이다.
김 회장은 “2018년 이후 두 번의 초대전이 있었는데, 기존 작품을 내보인것이어서 신작을 선보이는 것은 7년만이다”며 “13번의 개인전을 열면서 한 번도 같은 주제 또는 같은 소재를 사용한 적이 없었다. 2013년도의 개인전 이후 작업에 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고, 창작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내 작업에 대한 길잡이에 혼돈이 와서 시간이 길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각적 사색’으로 명명된 이번 전시회 구상을 2016년부터 해왔다. 근 10년전부터 고민을 해온 셈이다. 그는 전시회 제목과 관련해 “10여 년전 서예 법첩(法帖)을 깊이 연구하며 내 시각에 문자가 표정으로 보였다. 그때부터 머릿속에 상념처럼 고민이 있던차에 문자가 형상으로 보여서 이번 전시를 구상했고, 2016년경부터 자료 수집을 했다”며 “다만 어떤 재료로 내가 원하는 효과를 얻을 것인가의 실험의 시간이 지속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10호부터 150호까지 총 24점의 전각 작품을 선보인다. 단 글자는 ‘心’자 하나다. 김 서예가는 “좋은 문장으로 관람객들에게 소개하는 서예전도 좋지만 가장 가독성이 있는 단 한글자로 전시장을 구성하기로 했다”며 “문자로 보든, 감정의 표현으로 보든, 형상으로 보든, 제한 없이 관람객의 시선으로 생각과 사유를 스스로 영위했으면 하는 작업들이다”라고 말했다.
◇초3때 서예 입문…고교때부터 두각
울산 울주군 상북면 길천리에서 태어난 김 작가는 부모님의 이주로 5살 때 부산에서 학업을 이어갔고, 초등학교 3학년때 부모님의 권유로 서예에 입문했다. 전각은 중학교 1학년때 시작했다. 서예는 고등학교 시절에 본격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김 서예가는 “고교 시절 서예의 기초는 삼문 우성화 선생님이 잡아주셨고, 그때 실력이 일취월장 한 것 같다”라며 “대학에서는 네 분의 교수님과 몇 분의 강사님의 수업으로 내실을 다졌는데, 그 중에서도 모암 윤양희 선생님이 방황하던 나를 서예계에 자리잡게 해주셨다”고 설명했다.
서예와 전각의 매력에 대해 김 서예가는 “서예의 궁극은 자유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서예사는 완성되지 않았으며, 과거의 서예와 현재의 서예는 달라야 미래의 서예를 이어갈수 있다고 본다”며 “전각은 자법(字法), 장법(章法), 도법(刀法)이 주는 무한한 표현의 세계가 있는데, 이 것이 좋아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그는 2020년 제20대 울산미협 회장에 당선된 뒤 2023년 연임에 성공해 6년째 울산미협을 이끌어 오고 있다. 김 회장은 “울산시립미술관 개관에 지역 미술인들을 위해 동분서주한 것과 6회를 이어온 글로컷 아트마켓 등 울산 미술시장 개척에 보람을 느꼈다”면서 “다만 한국미술협회 내홍을 정상화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예인이라는 프라이드는 늘 가지고 있지만, 서예인으로 규정짓지 말아달라”며 “서예를 근간으로 내 작업을 이어갈 것이며, 내 작업이 사회 구성원의 한 명이라도 삶의 시각 변화에 영향을 끼친다면 큰 영광일 것”이라고 밝혔다.
김 작가는 부산 동래고등학교와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02년 결혼하며 울산에 정착했다. 울산미술대전 운영위원장과 글로컬 아트마켓 운영위원장, 아트페어 울산 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차형석기자 stevecha@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