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내전
연방국인 미국에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주 방위군(National Guard)이라는 군사 조직이 있다. 주 방위군의 통수권은 평시에는 주 정부에 있으나 유사시에는 연방 정부가 갖는 이원적 편제 하에 있는데(미국연방법전 제10편 제246조), 여기서 말하는 ‘유사시’란 외적의 침입, 반란 또는 연방법의 집행이 불가능한 경우를 가리킨다.
과거 연방 정부의 대통령이 해당 주지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주 방위군에 대한 통수권을 직접 행사한 사례들은 해당 주에서 발생한 소요(騷擾) 등 경찰력만으로 통제할 수 없는 비상사태를 통제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1954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공립학교에서의 인종 분리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을 때(Brown v. Board of Education), 이 판결에 따라 백인 학교에 가려는 흑인들을 위협하는 백인들의 소요 사태가 격화되자 흑인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1957년 아칸소주와 1963년 앨라배마주의 주 방위군을 대통령이 지휘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그로부터 약 70년이 지난 지금, 주지사의 동의 없이 대통령에 의한 주 방위군 지휘가 다시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 6월 캘리포니아주 엘에이를 시작으로 워싱턴 디시, 테네시주 멤피스, 일리노이주 시카고 그리고 오리건주 포틀랜드가 대상 지역이다.
노숙자들과 범죄자들을 없애겠다는 명분에서 주 방위군이 투입된 워싱턴 디시나 다른 도시들 모두 마땅한 사정 없이 주 방위군 통수권을 행사하겠다는 것 자체도 재량권 일탈·남용 시비를 일으키지만,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은 위 도시들에 투입되는 주 방위군이 해당 주가 아닌 텍사스주 등 다른 주 소속 병력이라는 점에서 그 전례가 없으며, 심각성의 정도가 다르다.
지금의 사태가 미국인에게 불러오는 근본적인 불안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 건국 초기인 1788년 알렉산더 해밀턴 등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에 의해 작성된 연방주의자 논집(The Federalist Papers)에서 우려한 사태, 즉 연방 내 한 주가 다른 주를 상대로 군사 행위를 일으킬 위험을 염려하였던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로스쿨 클레어 핀클스타인 교수가, 이번 명령은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공하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라고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행정부의 권력 행사를 제도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또 다른 권력 기구인 법원은 지난달 20일 포틀랜드에 주 방위군을 투입하라는 대통령의 명령이 적법 유효하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과 같은 주 방위군에 대한 지휘에서 더 나아가 우리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반란법(Insurrection Act of 1807)에 따른 군 통수권 행사 의사도 거듭하여 밝힌 바 있다. 대립을 진정시킬 제도적인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군 투입 대상 지역들의 주지사들과 시장들은 극도의 긴장 속에서 거듭하여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한 공동체 내에서 발생한 갈등의 해소를 구성원 간 합의가 아닌 반대자에 대한 박멸에서 찾는 지금의 국면이 고조되었을 때, 내전(內戰, civil war)이 발발할 가능성은 극적으로 높아진다.
정치학자 바바라 F. 월터는 저서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에서 한 나라가 내전에 이르는 여덟 가지 단계를 소개한 뒤, 미국은 이미 6단계에 해당하는 양극화, 즉 지배 집단이 표적 집단을 악마화하고 분리 배척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고 진단한다. 21세기, 경쟁상대가 없는 패권국가 미국의 이면에는, 현재의 미국은 구제 불능이며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대규모 충돌과 혁명을 일으켜 종말을 한시바삐 앞당겨야만 새로운 질서를 세울 수 있다고 믿는 우파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공격받고 쇠약해져가는 민주주의가 있다.
국내문제의 해결을 이유로 권력이 서슴없이 군대를 동원하려는 오늘날 미국의 모습은, 국회에 군대를 투입하고 명령에 불복하는 의료인을 처단하겠다는 비상계엄을 현실에서 경험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내게도 낯설지 않다. 미국인들의 불안에 대해, 그들의 민주주의에 빚진 세계 시민으로서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의무감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준희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