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한중 통화 스와프의 숨은 의미
최근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과 중국이 70조원(4000억위안)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5년 연장했다. 통화스와프란 사전에 정해진 환율에 따라 필요한 시점에 자국 통화를 상대국 중앙은행에 맡기고 그에 상응하는 상대국 통화를 빌려오는 계약이다. 특히 한중 통화스와프는 달러가 아닌 원화와 위안화를 직접 맞교환하는 방식이다. 이 계약의 일차적인 목적은 외환위기 등 비상 상황에서 외화 유동성을 확보해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금융 안전망’이다. 글로벌 금리 변동성과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현시점에서, 든든한 방파제를 유지한다는 상징적, 실질적 의미가 크다.
하지만 통화스와프의 기능이 이러한 거시적 위기 대응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 계약은 평시에도 양국 간 교역 패턴, 특히 기업들의 ‘결제 통화’ 선택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즉, 특정 통화의 국제적 사용을 촉진하는 ‘금융 인프라’로도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최근 싱가포르경영대, 드렉셀대, 컬럼비아대 연구자들과 함께 수행한 연구는 바로 이 지점을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이 연구는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학 연구 교류가 이뤄지는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중국경제 워킹그룹 미팅’에서 다음 달 발표될 예정이다.
분석 결과, 2008년 한중 통화스와프 체결 이후 한국 수출기업들의 무역대금 위안화(RMB) 결제 비중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흥미로운 점은 반대의 사례에서도 동일한 논리가 작동했다는 사실이다. 2012년부터 외교·정치적 이유로 한일 통화스와프의 연장이 중단되자, 한국 기업들의 일본 엔화(JPY) 결제 비중은 반대로 뚜렷하게 감소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수입대금 결제를 위한 무역금융이 편리해져서’라는 기존의 통념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 연구는 그 핵심 메커니즘으로 ‘은행의 위험관리 채널’을 제시한다.
전통적으로 중앙은행은 자국 통화에 대한 ‘최종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한국은행이 중국인민은행과 통화스와프를 맺는다는 것은, 한국은행이 국내 시중은행들에 대해 위안화에 대한 최종대부자 역할을 일정 부분 수행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일선 시중은행들의 의사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시중은행들 입장에서 위안화를 이용한 예금이나 대출 사업의 잠재적 유동성 리스크가 중앙은행 차원에서 관리된다고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즉, 위험이 감소한 만큼 은행들은 위안화 비즈니스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유인이 생긴다. 은행들이 위안화 관련 사업을 확대하면, 수출기업들 역시 위안화 거래의 장벽(거래 비용, 접근성 등)이 낮아져 자연히 무역 거래에서 위안화 이용이 확대되는 것이다.
실제로 데이터상으로도 이러한 유인 구조의 변화가 관찰된다. 통화스와프 이후 국내 은행들이 이전 대비 위안화 예금에 더 나은 금리 조건을 제시하자, 수출기업들도 이에 반응한 것이다. 수출대금을 위안화로 받을 경우 이전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예치할 수 있게 되면서, 달러화 대신 위안화를 결제 통화로 선택할 유인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연구는 이러한 효과가 통화스와프 체결 이전에 이미 중국 내 지점 등을 통해 현지 노출도가 높았던 은행들을 주거래 은행으로 둔 수출기업들에서 더 강하게 나타남을 보였다. 이는 통화스와프의 영향이 정확히 ‘은행’을 매개로 작동했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다. 물론 같은 논리로 원화 이용률이 증가할 수도 있으나, 결제 통화 선택은 경제 규모가 중요한 변수이므로 상대적으로 원화 이용의 증가는 위안화에 비해 작게 나타났다.
결국 이번 70조원 규모의 한중 통화스와프 갱신은 위기 시의 ‘금융 안전망’ 역할을 공고히 하는 것을 넘어, 평시에도 양국 간 무역 결제에서 위안화 사용을 촉진하는 ‘금융 인프라’로서의 기능을 지속시킨다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거시 경제 정책이 민간은행의 인센티브를 거쳐 개별 기업의 미시적 선택에까지 이르는 연쇄 고리를 이해하는 것은 앞으로 더욱 복잡해질 세계 금융 환경 속에서 정책의 숨겨진 파급 효과를 정확히 읽어내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사야 유니스트 경영과학부 교수 서울대 중소벤처기업정책센터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