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6장 / 불패의 달령 전투(74)
의병장 김덕령 장군의 죽음으로 의병들의 사기가 극도로 저하된 시기에도 울산과 경주의 몇몇 의병장들은 의병을 해산하지 않고 끝까지 왜병들과 싸웠다. 천사장 이눌도 그중의 한 명이었다.
한양을 다녀온 후로 천동은 말수가 더 적어졌다. 동무들이 그를 대신해서 열심히 농사일을 한 덕분에 가을걷이는 제대로 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토지보다 유난히 풍성한 결실을 맺은 것을 두고 이웃들은 시샘 반 부러움 반의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이웃들은 세 사람이 힘을 합쳐서 남들보다 두세 배 땀을 흘린 결과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 년 동안 먹을 식량과 종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비싼 가격에 처분해서, 몇 년째 농사를 짓지 못해서 풀뿌리 나무뿌리가 무성한 황무지 같은 밭과 천수답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이런 식으로 싼 땅만 사들이니 그 넓이가 무려 서른다섯 두렁은 되었다. 하지만 농사가 늘어남에 따라서 그들의 걱정도 커졌다.
이번에 사들인 황무지를 농사지을 수 있는 농지로 만들려면 또 엄청난 땀을 흘려야 한다. 그렇지만 그 황무지만 무사히 농지로 만들 수 있다면 부자 소리를 들으며 더 이상 양반들로부터 천출이라고 손가락질 안 당해도 될 것이다.
이웃마을에 사는 초시 김응석은 이번에도 직접 그들이 사들인 황무지를 돌아보고, 그것들이 값비싼 농지로 바뀌는 것을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저것까지 합해서 쉰 두락의 농지를 한꺼번에 빼앗으면 자신은 다시 근동에서 남부럽지 않은 부자로 행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즐겁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천동이 속량되고 관직도 제수 받은 이력이 있는 것이 걸리기는 하지만, 경상우병사로 있는 당숙의 힘을 빌리면 저런 놈들의 땅을 빼앗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지. 예전에 무과공부를 좀 한 것이 이럴 때 쓰일 줄은 몰랐네. 이놈들이 내게는 복덩어리들인 게야. 원래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 서방이 버는 거지. 좀 더 지켜보다가 황무지를 완전한 옥토로 만든 후에 빼앗는다면 다시 예전의 김 대감댁 명성을 되찾을 수 있어.’
김 초시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 이내 이마를 찌푸렸다. 앞으로 천동을 만나면 그가 먼저 인사를 해야 할 판이었다. 천출이기는 하지만 그는 정식으로 속량되었고, 관직도 초시인 자신과는 비교가 안 되는 봉사 나리였기 때문이다.
1596년 12월9일(음력) 이눌 장군은 진을 석읍에서 달령고개로 옮겼다. 연통을 받은 천동은 황무지 개간으로 흘린 땀을 식힌 후에 그날 밤 장군을 뵈러 달령으로 올라갔다. 가는 도중 두 곳에서 보초의 검문을 받았으나 이눌 장군의 서신을 보여주고 통과했다. 천동은 한 식경을 걸어서 천사장 이눌의 진영에 도착했다.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의병의 수가 훨씬 적었다. 고작 백여 명 정도에 불과해 보였다.
“장군을 뵈옵니다.”
“어서 오게, 양 장군.”
“다른 의병들이 들으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