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이 들려주는 철학이야기]운명을 향해 던져진 존재

2025-11-07     경상일보

늦은 시간,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 평범한 밤에 이유 없이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있다. 무언가 텅 빈듯한 허무한 기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이 든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는 이 익숙한 낯섦을 ‘불안’(Angst)이라 불렀다. 그는 <존재와 시간 Being and Time>에서 인간을 ‘세상 속으로 내던져진 존재’라고 말한다. 스스로 원한 적 없는 시간과 장소, 이름과 언어 등 삶의 조건에 이미 ‘던져져’ 있었고, 그 사실은 문득 우리를 생소하게 만든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이 던져짐이 단지 수동적 체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 안에는 미래를 향해 스스로 설계할 가능성인 ‘기투(Entwurf)’가 잠재돼 있다. 비유하자면 우리는 무대 위에 갑작스레 등장한 배우이며 대사와 동선, 결말까지 다시 쓸 수 있는 극작가이기도 하다. 행로(行路)는 누군가 써놓은 각본이 아니라, 지금 내가 고쳐 쓰고 있는 생생한 초고이다.

그런 변화는 언제 시작되는가? 그에 따르면 바로 불안이 그 출발점이다. 불안은 특정 대상에 대한 공포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서먹해지고 일상이 마치 공중에 뜬 것처럼 느껴질 때 솟구치는 정조다. 이 낯선 떨림은 거북하지만 정직한 거울이다. 그 거울 앞에 선 순간, 우리는 묻기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이데거는 불안을 삶의 병리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존재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최초의 신호다. 일상의 소란에 묻혀 있던 내면의 목소리를 불안이 되살린다. SNS 타임라인이 공허하게 느껴지고 회의실의 말들이 메아리처럼 비어 있을 때, 혹은 아무 말 없이도 친구들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낄 때가 바로 실존이 깨어나는 문턱이다.

그리고 그 문턱 너머에 기다리는 것이 바로 죽음이다. 즉 ‘죽음을 향한 존재’(Sein zum Tode)이다. 죽음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항상 적실(的實)한 사건으로서 우리를 압박한다. 미래는 미지수가 아니라, 반드시 다가올 유한성의 사실이다. 우리는 늘 ‘내일이 올 것’이라 믿지만, 그 믿음은 근거 없는 전제에 불과하다. 죽음의 자각은 유한성을 깨닫고 비 본래 적인 삶에서 본래 적인 자신으로 나아갈 수 있다. 삶을 ‘언젠가’가 아닌 ‘지금 여기’로 되돌린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자각으로 세인의 속삭임에 저항하고 본래 적인 자신으로 존재하라는 현존재 내부의 부름이 양심(Gewissen)이며 이 부름에 응답하여 비로소 우리는 고유한 존재 가능성을 향해 ‘결단’(Entschlossenheit)을 내릴 수 있다고 한다. 세상의 기대나 타인의 눈이 아닌 내 안의 목소리를 따라 사는 용기. 그것은 대단한 계획보다 “오늘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단순하지만 심오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세 개의 층위 즉 던져짐, 불안, 죽음은 하이데거의 실존 철학을 구성하는 핵심축이다. 던져짐은 우리의 출발을 결정하지만, 불안은 그 무대의 조명을 바꾸고, 죽음은 대사의 무게를 바꾼다. 세 가지가 만날 때, 인간은 운명의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삶의 공저자가 된다.

이 철학은 결코 먼 추상 속에 머물지 않는다. 오늘도 우리는 시스템과 정보, 타인의 시선과 비교에 던져진 채 살아간다. 불안은 일상적인 얼굴로 찾아오고, 죽음은 뉴스 속에서 우리를 흔든다. 그러나 바로 그 혼란에서 우리는 그가 말한 ‘진정성(Eigentlichkeit)’으로 향하는 문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존재한다는 것은 청사진 없이 건축을 쌓는 일이다. 벽돌은 과거가 건네주지만, 설계는 현재의 결단이며, 완공 기한은 미래가 아니라 죽음이 알려 준다. 길은 미리 정해지지 않았고, 발자국은 순간마다 새로 그려진다. 이 불확실함은 두려움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던져진 삶 위에 내가 새겨 넣는 고유한 흔적이 바로 실존이다. 저마다의 존재는 우주에 버려진 채 피어나는 하나의 숨결이다. 불안은 숨결을 흔드는 바람이다. 죽음은 서늘한 달처럼 먼 상공에 걸려 있으나, 그 은빛 아래에서 운명의 길을 찾아야 한다. 침묵하는 은빛은 무겁고 어둡다. 하지만 그 어둠을 지나며 종종 일어서야 한다. 던져진 그 자리에서 시작해 불안을 견디고 죽음을 기억하며 써 내려가는 당신만의 문장, 그것이야말로 운명을 쓰는 강한 서명이다. 언어라는 집에서 잠시 나그네로 지내다 죽음의 문 앞에서 귀향을 깨닫는 것이다.

김진명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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