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분옥 시조시인의 시조 美學과 절제](88)창밖에 국화 심어-김수장(1690~?)

2025-11-07     경상일보

삶에 대한 철학 담긴 전통 미학의 상징

창밖에 국화 심어 국화 밑에 술을 빚어
술 익자 국회 피자 벗님 오자 달 돋아온다
아이야 거문고 청처라 밤새도록 놀리라
<해동가요>

마당귀에 국화 피는 계절이다. 가을도 안 마당까지 다가왔다. 팔월의 우거진 풀 속에서 있는 듯 없는 듯하더니 무성하던 풀이 잦아지니 자연스레 고개 내미는 국화를 본다. 국화의 의미를 새길 줄 아는 나이는 이제 철이 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늦가을 고절(孤節)의 미학에 다가섬은 쓸쓸함의 나이에 이르렀다는 뜻이기도 하다.

젊은 날에야 어디 만개한 봄꽃에 눈이 가고 마음 빼앗겼지 누런 황국을 왜 그리는지 몰랐었다. 다투어 피는 봄꽃 사이에서 지난여름의 뜨거움에 쫓기면서도 그냥 풀숲에 엎드려 견디어서 마침내 가을 언저리에 조용히 고개 드는 국화를 본다. 밥맛 들자 보리양식 떨어지듯, 철들자 인생은 해질녘을 헤아리니, 유한한 인생이기에 삶은 하루하루가 더욱 바빠진다.

들고나고 아침저녁 국화에 눈 맞추는 즐거움도 얼마나 오래갈지 가을가면 오상고절의 국화도 어느새 지고 말겠지.

국화는 단순한 꽃의 외형만이 아닌, 자연과 인생에 대한 깊은 철학과 감성을 담고 있다. 오랜 세월 전통 미학의 상징으로 자연의 이치와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꽃이다. 담묵을 묻혀 꽃잎을 그리고 농묵으로 줄기와 잎을 그려 충과 절개의 상징을 담아보기도 했다.

맑고 고요한 시간 은은하면서도 깊은 향기로 차분하게 마음 다스리는 시간, 단순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 명상과 사색의 시간으로 이끈다.

국화는 단순히 꽃 이상의 존재로서, 삶의 깊이를 사유하게 만드는 전통 미학의 귀중한 상징이다. 우리의 문화와 예술 속에 살아 숨 쉬며 전통의 가치를 이어간다.

김수장은 조선의 숙종·영조 시대를 대표하는 가인이다. 시조를 짓고 시조창을 하는 가인으로서 시가문학사에 남긴 큰 업적인 ‘해동가요’를 편찬했다는 점이다.

아무렴, 이 가을 가기 전에 친구를 불러 진한 국화차 한잔을 나눔은 또 어떤가.

한분옥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