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안주철 ‘밤이 떨어질 때’

2025-11-10     차형석 기자

지금은
물큰한 노을이
마지막 남은 하늘 한겹을 넘는
밤이 떨어질 때

새 날아간 거친 하늘 위로
늦가을 꽃이 피고
열매 맺을 시간이
다음 생일 때

밤이 떨어질 때

생의 맨 가장자리까지 손가락을 펼친 호박잎 위에
누구도 손대지 않는
개복숭아 빈집 지붕 위에
밤이 떨어질 때

위로해도

위로해도
위로가 닿지 않는
너무나 짧은 생애 위로

밤이 떨어질 때
가시가 침묵할 때


소멸의 이면, 새로운 생명의 잉태

이 시에서 밤은 먹는 밤이 아니라 저녁 이후 깊어지는 밤이겠다. 노을이 물러가고 밤이 오는 시간, 그런데 시에서는 그런 어두운 밤이 온다거나 깊어진다, 가 아니라 ‘떨어진다’라고 표현하였다. 떨어진다는 것은 중력에 의해 끌려 내려오는, 어쩌지 못하는 하강의 이미지를 내포한다. 단순히 저녁이 오는 풍경을 넘어, 무언가 사라져 가는, 혹은 삶의 한 시기가 끝나고 있음을 암시한다.

시에 나오는 늦가을의 꽃, 생의 가장자리까지 손가락을 펼친 호박잎, 누구도 손대지 않은 개복숭아는 모두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쓸쓸함, 쇠잔함,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존재들이다. 이들 위로 밤이 떨어진다. 슬픔과 고통이 너무 커서 어떤 위로도 닿지 못하는, 충분히 꽃피우거나 드러내지 못하고 스러져가는, 더욱 확실하게 생의 바닥으로 미끄러지는 것들.

‘가시가 침묵할 때’는 무슨 의미일까? 가시는 아픔이나 저항을 의미하는데 그런 가시마저 침묵한다는 것은 이제 그 모든 것이 멈추고 유한함과 덧없음을 받아들이며 고요히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감을 의미한다.

결국 밤이 떨어지듯 모든 것은 소멸을 향해 가고, 그러나 우리는 마치 떨어진 밤이 땅에 묻혀 싹이 돋듯 다음 생의 열매를 그려보는 것이다.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