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깊이 있는 사고를 하지 않게 되는 시대
최근 OpenAI가 발표한 GPT-5는 이전 모델들을 넘어서는 지능적 도약을 이뤘다고 평가된다. 코딩, 수학, 글쓰기, 의료, 시각 인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의 성능을 갖췄으며, ‘쉬운 질문일 땐 빠르게 답하고, 어려운 질문일 땐 깊이 생각한다’는 통합 시스템으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이런 기술적 성취는 분명 인류 지식 활용과 생산 방식에 혁신을 예고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에게 던지는 중요한 물음이 있다. “우리는 이제 GPT-5와 같은 인공지능(AI)을 도구화하는가? 아니면 그 반대로, 우리의 지능이 이러한 도구에 길들여지는가?”라는 질문이다.
우선, 우리 인간이 깊이 있는 사고를 하지 않게 되는 조짐이 여러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GPT-5와 같은 고도화된 도구가 점점 더 일상화되면, 복잡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는 작업조차 “이 도구에 맡기면 되겠지”라는 태도가 퍼질 수 있다. 예컨대 글쓰기, 리포트 작성, 전략적 기획, 문제 해결 등이 AI로부터 ‘완성품’을 받아내는 방식으로 바뀌어갈 수 있다. GPT-5가 글쓰기, 코딩, 의료 등 자주 쓰이는 분야에서 보다 유용해졌다는 발표는 이를 방증한다.
인간이 스스로 머리를 굴려야 할 필요성이 축소된다면, 결국 ‘사고 근육’은 퇴화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우리의 지능이 ‘도난당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 현실이 다가오고 있다. 여기서 ‘도난당하다’는 표현이 비유적이지만, 그만큼 우리 스스로의 사고와 판단 과정을 외부화하고, AI가 대신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인간이 고민하고 판단하고 선택했던 여러 순간들이, 이제 GPT-5 같은 시스템에게 맡겨지기 시작한다. 이런 변화 속에서 인간은 점점 ‘질문을 던지는 존재’에서 ‘질문을 받는 존재’, 혹은 ‘답을 선택하는 존재’로 위치가 바뀔 위험이 있다. 스스로 생각을 구성하지 않고, 주어진 옵션 중 고르는 방식으로 사고가 정형화된다면, 그건 일종의 지능의 ‘착취’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인간이 스스로 가축화되어가는 현실은 이 흐름과 연결된다. 가축화란 본래 인간이 동물을 길들이고 관리하는 개념이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이 기술에 길들여지고 ‘관리되는 존재’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AI가 제안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AI가 제공하는 틀 안에서만 움직이며, 스스로의 판단을 포기할 수 있다. GPT-5 같은 시스템이 ‘전문가 수준의 지능’을 손쉽게 제공한다면, 사람들은 점차 스스로 복잡한 사고를 하기보다는 그 지능을 도입한 시스템에 기대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발표문에서 GPT-5가 “전문가 수준의 지능을 모두에게 제공”한다는 문구가 들어간 것은 의미심장하다.
기술이 우리를 돕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술에 종속되는 과정이 그저 도구적 전환이 아니라 존재의 전환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이다. 더 나아가 ‘깊이 있는 사고’가 사라지는 시대는 단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 구조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깊이 있는 사고가 줄어들면 비판적 시민이 줄어들고, 집단적으로 주어진 정보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고 수용하는 태도가 증가한다. 그러면 권력 구조나 기술이 바라는 대로 행동하게 되는 인간이 많아질 수 있다. AI가 제시하는 정형화된 답변, 즉 효율적이고 빠른 답변이 미덕이 되는 환경에서, 질문을 던지고 기다리고 고민하는 시간은 낭비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질문의 시간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중요한 사고의 여지를 잃게 된다.
이런 흐름은 스타트업, 창업가, 혁신 생태계에서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당신이 혁신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면, 기술을 활용하는 것은 필수지만 동시에 기술이 당신을 대체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기술이 당신의 사고를 차단하는 필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기술은 당신이 더 깊이 고민할 여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우리가 직접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구조를 설계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그 판단을 다시 검토하는 순환을 멈추면, 기술은 당신을 돕는 기계가 아니라 당신을 제어하는 기계가 된다.
결론적으로, 인공지능이 열어가는 지능의 시대는 엄청난 기회이지만 동시에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인간이 ‘깊이 사고하는 존재’로 남을지, 아니면 ‘생각 대신 선택하는 존재’로 전락할지는 우리의 태도에 달려있다. 우리는 기계의 지능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기계와 함께 사고하고, 기계가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자극하는 존재로 남아야 한다. 무릇 진정한 인간의 지능은 질문을 포기하지 않을 때 비로소 빛이 난다.
구자록 울산정보산업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