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울산화력발전소 해체붕괴 사고가 던진 경고
2025년 11월6일 오후 2시, 울산 남구 용잠동 울산화력발전소 해체현장에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가동이 중단된 노후 보일러 타워를 발파해체하기 위해 사전 취약화 작업을 하던 중, 구조물이 한쪽으로 기울며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이 사고로 작업자 9명이 매몰되고 7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사고는 노후 화력발전소 해체공사의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해체공사는 단순한 철거가 아니다. 기존 구조물을 계획적으로 철거하는 고난이도의 건설공사로서, 하중 변화와 잔존 강도를 정밀하게 계산해야 한다. 그래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38조는 사전조사 및 작업계획 수립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번 사고에서는 이 기본 절차가 제대로 작동되었을까.
해체작업계획서의 작성과 이행이 부실하진 않았을까. 계획서에는 절단 위치, 순서, 방법, 장비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야 하나, 설계도면과 실제 시공이 일치하지 않았거나 구조검토가 형식적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취약화 작업 중 하중 중심이 한쪽으로 쏠리며 붕괴된 것은 충분히 예견된 결과였다.
보일러 타워는 내부에 복잡한 강재 트러스와 버팀 구조가 얽혀 있는 고층 중공형 구조물이다. 이런 구조물은 일부 부재만 제거되어도 잔존 부재에 응력이 집중되어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 이번 사고 역시 주요 지지부재가 절단되며 중심 이동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임시지지구조(가이와이어, 수평타이 등)가 충분히 설치되지 않았거나, 체결 상태 점검이 미흡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또한 틸트미터나 토탈스테이션 등 실시간 변위계측 장비가 제대로 작동 했다면 붕괴 전 미세한 이상 징후를 감지할 수도 있었지만, 이런 감시체계가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의 핵심 원인은 공학적 구조검토 및 해체작업계획서의 미흡, 임시지지계획의 미비, 실시간 감시체계 부재, 현장 통제력 부족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일정 압박’과 ‘비용 절감’이 안전보다 우선되는 산업 현장의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이 보일러 타워는 40년 이상 사용된 노후 구조물로, 부식과 단면 손상, 연결부 열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이러한 노후 요인이 설계도서에 반영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고, 잔존강도와 하중 재분배에 대한 정밀 검증 없이 절단작업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절단 순서의 대칭성 관리 실패 또한 붕괴를 가속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비슷한 사고는 해외에서도 있었다. 2010년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의 화력발전소에서는 60m급 보일러 타워 해체 중 하부 기둥 절단 과정에서 하중이 비정상적으로 재분배되며 구조물이 도미노처럼 붕괴해 3명이 사망했다. OSHA는 이후 모든 해체공사에 구조안정성 조사와 임시지지 설계 승인, 붕괴반경 격리 등을 의무화했다. 2016년 영국 디드콧 A 화력발전소에서도 발파해체 준비 중 일부 건물이 붕괴되어 4명이 사망했다. 영국 조사당국은 사전 취약화 절차, 잔존안정성 검토, 절단 순서, 임시지지 설계, 실시간 모니터링을 핵심 관리요소로 제시했다.
이들 사례가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안전관리시스템이 실패하는 순간, 결과는 예외 없이 대규모 붕괴와 인명피해로 이어진다. 이제는 제도를 바꿔야 한다. 산업설비형 공작물도 건축물 해체와 동일하게 지자체의 해체계획서 심의·승인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구조기술사의 검토와 현장 승인 체계를 의무화해야 한다. 또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더해, 해외 선진기준을 병행 적용해 발파해체 공사의 안전성을 높여야 한다.
이번 사고는 안전이 여전히 생산성과 일정 뒤로 밀려 있는 산업현장의 현실을 보여준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생명의 조건이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노후 설비 해체공사의 안전관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일이다.
울산화력발전소 붕괴사고는 대한민국 산업안전의 수준을 가늠하는 시험대다. 해체는 ‘파괴’가 아니라 ‘안전하게 멈추는 기술’이어야 하며, 안전은 ‘기술’이 아니라 ‘시스템’이어야 한다. 이 원칙이 현장에 자리 잡지 않는다면, 비극은 다시 반복될 것이다.
정안태 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국장 울산안전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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