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피로한 한국사회가 회복력을 되찾으려면

2025-11-12     경상일보

사회는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처럼 자기조절 능력을 잃게 되면 병을 앓게 된다. 우리 한국 사회가 병이 든 증세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저마다 분노 조절을 하지 못해 직장과 가정에서 상처를 받고 있다. 성공을 위한 급가속은 번아웃 증후군을 유발해 왔다. 기회를 박탈당하고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청년은 좁은 방에서 하루를 연명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숨이 막히며 건강한 조절력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의 몸은 보이지 않는 자율신경계 덕분에 스스로 균형을 유지한다. 교감신경은 긴장과 각성을 담당하고, 부교감신경은 이완과 회복을 맡는다. 이 둘이 조화롭게 작동할 때 몸은 건강하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문제는 금세 드러난다. 교감신경이 우세하면 불면과 위장장애, 불안이 찾아오고, 부교감신경이 지나치면 무기력과 우울함이 생긴다. 인간의 몸이 이런 불균형에 시달리듯, 지금 한국 사회도 자율신경의 균형을 잃은 듯하다.

사회 전체가 늘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 경쟁이 일상이 되고, 속도가 미덕이 되었다. 사람들은 쉬면 불안하고, 멈추면 낙오한다고 느낀다. 사회의 교감신경이 항진된 결과다. 스마트폰 알림과 뉴스 속 자극, 끝없는 비교와 평가의 시스템이 교감신경을 자극하며 우리를 쉼 없이 몰아붙인다. 그러는 사이 부교감신경, 즉 이완과 회복의 힘은 점점 쇠약해지고 있다. 휴식은 게으름으로 오해되고, 느림은 낭비로 치부된다. 그 결과, 마음은 늘 긴장 속에서 미세한 피로를 쌓아가며, 어느 순간 사회 전체가 ‘번아웃 증후군’을 앓는다.

자율신경이 몸의 자동조절 장치라면, 사회의 자율신경은 제도와 문화, 인간관계의 리듬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 리듬을 잃었다. 정치와 언론은 자극으로 반응을 유도하고, 학교와 직장은 성과를 위해 감정을 억누른다. 공감과 배려는 뒷전으로 밀리고, ‘생산성’이 인간의 가치를 대신하고 있다. 이런 사회는 마치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불면의 몸과 같다. 회복이 없으니 점점 더 예민해지고, 결국 자신을 소모한다.

몸이 건강해지려면 자율신경의 균형이 필요하듯, 사회도 그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

첫째, ‘사회적 부교감신경’을 복원해야 한다. 휴식과 감정 회복의 문화를 만드는 일이다. 휴식은 나태가 아니라 생리적 회복의 조건이다. 공공이 주도하는 심리방역, 지역 커뮤니티의 명상·예술·치유 프로그램 확산이 필요하다. 직장 내 ‘쉼의 권리’를 제도화하고, 학교 교육에서도 정서 회복과 공감 훈련을 강화해야 한다. 숨 고를 틈이 있는 사회가 건강하다.

둘째, 공감의 네트워크를 재구축해야 한다. 자율신경이 상호 억제와 균형으로 작동하듯, 사회도 경쟁보다 협력의 신경망을 세워야 한다. 정치와 미디어가 분노와 자극으로 사람들을 분리한다면, 지역 공동체와 언론은 ‘부교감적 커넥터’가 되어야 한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공론장, 시민이 참여하는 정책 결정 구조, 협력적 의사소통의 회복이 필요하다. 신뢰가 깨어진 사회에서는 아무리 제도가 정교해도 작동하지 않는다.

셋째, ‘회복 탄력성 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 사회정책의 중심을 경제 성장에서 ‘마음의 건강’으로 옮겨야 한다. 개인의 스트레스 수준과 사회적 안정감을 측정하는 새로운 지표를 도입하고, 청년·노인·돌봄 노동자 등 심리적 취약층을 보호하는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정신건강 정책은 보건복지의 부속 기능이 아니라 국가 전략의 한 축이 되어야 한다. 마음이 건강해야 사회가 지속할 수 있다.

몸이 자율신경의 균형을 잃으면 병이 오듯, 사회가 자기조절 능력을 잃으면 불안과 분노가 일상화된다. 지금 우리는 그 증상 한가운데 서 있다. 그러나 다행히 몸처럼 사회도 회복력을 갖고 있다. 긴장을 풀고, 속도를 늦추며, 서로의 리듬을 맞추면 자율신경은 다시 균형을 되찾는다.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다. 숨 고를 틈이 있는 사회, 서로의 마음을 돌보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피로한 한국 사회가 다시 건강을 되찾는 길이다.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