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소영의 기후2050]기후변화가 바꾼 시험의 계절
매년 11월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말이 있다. ‘수능한파’, 수능 날엔 꼭 추워야 한다는 불문율처럼 굳어진 이 표현에는 단순한 기온보다 더 깊은 정서가 담겨 있다. 두꺼운 패딩, 꽁꽁 언 손, 그리고 긴장으로 굳은 얼굴들. 사실 우리가 느끼는 수능한파의 대부분은 기압골보다 강한 ‘불안의 저기압’이 만든 심리적 추위가 아닐까 싶다. 실제 한파 수준의 추위가 닥쳐서가 아니라, 시험이라는 압박이 몸의 체온조절 능력까지 떨어뜨리기 때문에 실제보다 더 춥게 느껴지는 것이다. 즉, ‘수능한파’는 실제 날씨가 아닌 ‘마음의 한파’에서 비롯됐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실제로 수능한파는 얼마나 자주 찾아왔을까? 기상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11월의 ‘한파일수’는 0일이었다. 기상청이 한파일수로 카운팅하는 기온이 ‘일 최저기온이 영하 12℃이하’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쩌면 이 시기에 한파가 나타날수도, 나타나서도 안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하의 추위가 온 수능날도 있었다. 1993년 첫 수능 이후 지금까지 32번의 수능 중 서울에서 영하권을 기록한 해는 8번 차례. 그 가운데 가장 추웠던 1998년(99학번)은 영하 5.3℃였지만, 이후 대부분은 영상권이었다. 심지어 지난해 수능일 아침은 13.2℃로, 역대 가장 따뜻한 수능으로 기록됐다.
이제 수험생 손끝이 시리던 시절은 기억 속으로 멀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전국 평균기온은 9.7℃로 평년보다 2.1℃ 높아 역대 3위를 기록했다. 평균 최고기온 15.6℃, 최저기온 4.9℃ 역시 모두 평년을 웃돌았다. 한반도 주변 해수면 온도도 최근 10년 평균보다 2.3℃ 높았다.
아직 기상청의 11월 기후통계분석 자료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직전 10월만 보아도 기후관측 사상 가장 따뜻한 10월로, 평년보다 2.3℃ 높고, 특히 밤기온이 평년보다 4.1℃나 높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서쪽으로 확장되며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계속 유입되면서 10월 상·중순 전국 고온 지속된 가운데, 10월 평균 해수면 온도 23.3℃로, 최근 10년 중 가장 높은 상태를 유지했다. 즉, 수능이 치러지는 11월 중순은 이제 기후학적으로 ‘초겨울’이 아니라 ‘늦가을’에 가깝다. ‘수능=한파’라는 고정관념이 더 이상 성립되지 않는 이유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건 예측하기 어려운 기후변동성이다. 갑작스런 일교차, 건조한 공기, 미세먼지가 수험생의 집중력을 흔든다. 올해 수능날도 영하의 한파보다는 큰 일교차와 미세먼지가 변수로 꼽힌다. 수험생들은 두꺼운 옷 한 벌보다 얇은 겹옷으로 체온을 조절하고, 실내 적정온도(20~24℃), 습도(40~60%)를 유지하는 것이 집중력에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마음의 한파를 안정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상전략’이다.
기후가 바뀌면 계절의 감각도, 사회의 시간표도 달라진다. 1990년대의 수능한파는 산업화 시대의 기억이었다면, 2020년대의 수능은 기후변화 시대의 현실이다. 추위가 사라진 자리에는 따뜻한 공기와 불확실한 날씨변수가 남았다. 시험보다 먼저 바뀐 건, 바로 기후가 아닐까 싶다.
맹소영 기후칼럼니스트·웨더커뮤니케이션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