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산업수도 넘어 스포츠 문화도시 꿈꾼다]시민·기업체 참여가 시민구단 성공 열쇠
아시아 최초의 시민구단인 일본 히로시마 도요 카프는 전후 폐허에서 시민 2만여명의 희망으로 탄생했지만, 결국 기업의 품으로 돌아갔다. 국내 첫 시민프로축구단 인천유나이티드는 22년이 지난 지금도 연 수십억원의 시 보조금에 의존 중이다. 성남FC와 경남FC는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구단의 운명이 결정되는 악순환을 겪었다. ‘시민이 주인인 구단’이라는 이상적 모델은 현실의 벽 앞에서 재정 의존과 정치 외풍, 운영 부실의 악순환을 피하지 못했다. 더 이상의 실패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국내외 시민구단의 현실을 되짚어보고, 이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울산이 성공적인 시민구단 운영을 위해서는 형식적 창단이 아닌 구조적 혁신이 필요하다.
◇아시아 최초의 시민 구단, 히로시마 도요 카프
지난 1949년 2차대전 직후 일본 히로시마는 폐허였다. 산업 기반이 모두 파괴됐고 도시 재건은 요원했다. 그런 상황에서 시민 2만여명이 ‘1인 100엔 모금 운동’을 벌여 탄생한 게 히로시마 도요 카프다. 아시아 최초의 시민 구단이자, 도시 재건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현실 앞에서 무너졌다. 1950년대 초반 몇 해는 성공했지만, 1960년대 들어 재정난이 심화됐다. 시민 후원만으로는 구단을 유지할 수 없었다. 결국 1968년 마쓰다(당시 토요 공업) 자동차가 경영에 참여하며 최대 주주가 됐다. 히로시마시는 여전히 도요 카프를 지원하고 있지만, ‘시민 구단’이 아닌 ‘지원을 받는 기업구단’의 형태다.
◇일본 독립리그의 현실, 와카야마 웨이브스
일본 간사이 독립 리그(KIL)에 소속된 와카야마 웨이브스는 인구 7만명의 소도시 타나베시가 중심이 돼 창단했다. 이 구단은 지자체와 소상공인 후원, 시민 크라우드펀딩으로 운영된다.
구단은 노쇠한 시골 도시에 젊은 인력을 공급하겠다고 설득하며 지역 주민들의 지지를 얻었다. 기한 내 선수가 프로구단에 가지 못하면 지역 일자리를 알선해 준다. 선수도 야구 다음 인생을 준비할 수 있고, 지역 입장에서도 젊은이가 유입돼 서로 도움이 된다. 겉으로는 성공적인 지역 밀착형 구단으로 보인다. 지역 청년 인재 유입, 지역 경제 활성화 등의 효과도 거두고 있다.
그러나 와카야마는 프로 1부가 아닌 독립리그 소속이다. 선수 급여도 적고, 관중 규모도 제한적이며 중계권 수익도 거의 없다. 와카야마 웨이브스는 지역 기반 야구단의 순수한 정신을 지키고 있지만, 동시에 독립리그라는 틀에 갇혀 만년 재정난과 제한된 경쟁력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있는 딜레마를 보여준다.
◇국내 시민구단 1호, 인천 유나이티드의 ‘인천시 의존 지속’
인천 유나이티드는 지난 2003년 창단된 국내 첫 시민프로축구단으로, 2002년 월드컵 이후 대도시를 중심으로 추진된 K리그 시민구단의 원형이다. 인천시는 당시 할렐루야 축구단 유치 대신 시민구단 설립을 택했고, 시 보조금과 기업 후원, 입장권 수입, 굿즈 판매 등으로 운영 재원을 마련했다. 창단 초반에는 성공적인 행보를 보이며 ‘시민구단의 모범’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 인천은 여전히 인천시의 예산에 의존하고 있다. 매년 수십억원 규모의 시 보조금은 필수다. 올해는 그 의존 구조가 다시 드러났다. 인천은 지난해 창단 21년 만에 K리그2로 강등됐다가, 1년만에 조기 우승으로 1부 리그 복귀를 확정했다. 보통 시민구단은 강등 후 예산이 삭감되지만, 인천시는 올해 보조금을 유지해 빠른 재승격의 기반을 마련했다. 숭의아레나파크 완공 이후 구단은 경기장 임대료와 부대시설 운영으로 일부 수익을 확보했지만, 근본적인 자립 구조를 만들지는 못했다. 인천유나이티드는 여전히 ‘성공도 실패도 아닌, 지속적 의존 상태’에 머물러 있다.
◇동네북 시도민구단
성남FC는 지난 2004년 창단 이후 자체 경기장 건설, K리그 1부 승격, 아시안컵 우승 등 화려한 성과를 거뒀다. 한때는 ‘시민구단의 성공 사례’로 꼽혔다. 하지만 2022년 당시 성남 시장이 구단의 장기적인 재정 적자와 경기력 부진, 시민 세금 부담, 정치적 논란 등의 이유로 매각을 추진하는 등 논란의 중심이 됐다.
경남FC도 유사한 상황을 겪었다. 지자체장이 교체될 때마다 구단의 운명이 결정되는 모습이 반복됐다.
울산시축구협회 관계자는 “시민구단 성공의 핵심은 기업과 시민들의 참여다”며 “우리나라 경제·문화 사정상 바르셀로나 같은 해외 성공 사례와 달리 흥행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요즘은 개인 활동·취미가 다양하다 보니, 스타플레이어를 통한 관중 동원력 확보, 시민과 초밀착형 구단 운영, 프랜차이즈 선수 육성 같은 시민들을 경기장으로 유인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우선 철저히 기업 논리로 접근해 시장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동섭기자 shingiza@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