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동티모르 아세안 정식 가입, 울산시와 국제 협력

2025-11-14     경상일보

동티모르가 10월 2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제47차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11번째 회원국으로 공식 승인됐다. 오랜 준비 끝에 지역 협력체제에 편입된 이번 결정은 동티모르에게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동시에, 한국과의 협력 관계가 한층 심화될 전환점이 되고 있다.

동티모르의 아세안 가입은 한국의 외국인 노동정책에도 의미 있는 변화를 예고한다. 현재 E-9 비자로 한국에 입국하는 외국인 근로자 16개 송출국 중 8개국이 아세안 회원국이다. 이는 한국의 고용허가제가 이미 아세안을 중심축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동티모르 출신 E-9 근로자는 3879명으로 전체의 약 1.2%에 불과하지만, 전년 대비 13.5% 증가하며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인구 140만 명의 최빈국 동티모르가 아세안 회원국이 되면서, 한국과의 협력 구조는 더욱 체계화될 전망이다.

이러한 변화를 가장 체감하는 곳이 울산이다. 울산은 2023년 말 기준 E-9 근로자 5076명으로 전국의 약 2%를 차지한다. 주목할 점은 증가율이다. 울산의 E-9 근로자는 전년 대비 60.3% 급증했다. 이는 전국 평균 증가율(30%대)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제조업 중심 산업도시 울산의 인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동티모르를 비롯한 아세안 출신 근로자들이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산업 현장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한 언어·문화 지원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울산시교육청은 2022년부터 26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외국인 학생 대상 특별학급을 신설하고, 공교육 내 한국어 수업을 확대했다. 현대중공업과 지역 기업들도 지자체·교육청과 협력해 외국인 근로자와 그 가족을 위한 생활 적응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울산의 한 중소 제조업체 관계자는 “한국어 교육이 일상회화 중심이라 실제 작업 현장에서 쓰는 용어는 따로 가르쳐야 한다”며 “안전교육도 통역에 의존하다 보니 효율이 떨어진다”고 토로했다.

동티모르의 아세안 가입은 단순한 외교 이슈가 아니다. 울산이 국제협력의 지역 주체로 나설 수 있는 전환점이다. 울산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세 가지다.

첫째, 산업 맞춤형 한국어 교육센터 설립이다. 제조업 도시 특성에 맞춰 현장 언어와 안전교육, 직무별 회화를 통합한 실용형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 단순 언어 학습을 넘어 산업 현장의 효율성과 안전성을 높이는 투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 지역 통합형 교육 네트워크 구축이다. 지자체·교육청·기업이 협력해 ‘현장 직무교육-지역 생활언어-행정서비스’가 연계되는 통합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울산은 이미 산업 기반과 교육 인프라를 갖춘 도시다. 이러한 지역 중심 언어 통합 체계를 선도할 충분한 여건이 있다.

셋째, 한-동티모르 지방정부 차원의 교육 협력 강화다. 최근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동티모르 관광상공부 공무원 15명을 대상으로 무역통상 역량강화 초청연수를 진행했다. 울산시도 동티모르 내 세종학당·직업훈련기관과 연계해 사전 직무교육, 온라인 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중앙정부를 넘어서는 ‘지역 외교’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

울산의 경험은 부산·창원 등 다른 산업도시로 확산될 수 있다. 나아가 한국의 고용허가제가 지역 기반의 지속 가능한 언어 통합 모델로 발전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어 교육은 단순한 언어 훈련이 아니다. 외국인을 ‘일시적 노동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시민’으로 포용하는 과정이며, 산업 경쟁력과 사회 통합을 동시에 이끄는 전략이다.

동티모르의 아세안 가입이 국가 간 협력의 새 지평을 연 것처럼, 울산의 언어 포용은 사람과 지역을 잇는 지속 가능한 국제협력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윤다혜 동티모르 한국어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