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열의 고용노동이슈(31)]청년근로, 값싼 손이 아닌 존중받는 노동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일하던 스물여섯 청년의 사망은 우리 사회에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주당 80시간 안팎의 노동 정황, 휴게 미제공 논란, 2022년 이후 승인된 산업재해 63건이라는 수치가 전해진다. 개별 기업의 일탈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신호다. 사건 직후 고용노동부가 조사에 착수하고, 유가족과 회사는 합의했으며 산재 신청은 취하됐다. 그러나 절차의 귀결이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지우진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과제를 더 선명하게 남긴다.
뿌리는 분명하다. 장시간·저임금이 응축된 이중구조다. 대기업·정규직의 두터운 방패 뒤에서 중소·서비스업, 원하청, 비정규·특고·플랫폼 영역으로 위험과 과로가 전가된다. 비정규직 비중은 여전히 높고 특고·플랫폼 종사자는 수백만 명으로 추정되지만 제도권 대화의 대표성은 충분치 않다. 이 공백이 현장의 안전 사각과 과로를 구조화한다.
해법은 구호가 아니라 설계다. 유연성은 필요하지만 보호와 함께 가야 지속된다. 근로시간 유연화 논의는 건강권, 연장근로 상한, 연속휴식 원칙과 결합돼야 한다. 예외는 명확한 기준과 사후 점검을 전제로 해야 한다. 직무전환과 임금체계 개편도 데이터 기반 직무가치 평가와 현장 참여가 뒷받침될 때 현실성을 갖는다. 사회적 대화는 형식적 회의체가 아니라 실행을 견인하는 플랫폼으로 재구축돼야 한다. 의제 설정을 현장에 열고, 합의 이행에 대해 인센티브와 제재를 병행하는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첫번째 과제는 시간을 사실로 만드는 인프라다. 모든 사업장의 근로시간 기록 의무를 강화하고 전자기록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되, 영세사업장에는 시스템 비용을 지원해 행정부담을 낮춰야 한다. 이는 과로 인정, 임금·휴게 분쟁을 줄이는 최소한의 증거 기반이다.
둘째, 청년근로자 보호를 별도 규율로 명문화해야 한다. 포괄임금제는 사전 교육, 항목별 고지, 명세서 교부를 전제로 하고 위반 시 사용자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첫 일터의 초과노동을 흡수하는 관행을 제도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셋째, 국제 기준에 맞는 휴식과 상한 체계를 정밀화하자. 유럽연합은 주당 평균 48시간 상한과 일일·주간 연속휴식을 보장한다. 일본은 과로사 예방을 위해 예외 상황에서도 월 100시간 미만, 연 720시간 상한을 명문화했다. 한국의 52시간제는 숫자보다 집행, 기록, 감독이 취약하다. 연속휴식 실효성, 위반의 입증책임 전환 등 집행력을 높여야 한다.
넷째, 프랜차이즈 납품망의 본사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다수 청년이 종사하는 요식업, 물류, 리테일 분야에서 안전 및 근로시간 준수 책임을 계약, 공시, 공공조달 평가와 연동하는 한국형 공급망 인권실사 도입을 검토할 때다. 위험을 하청과 점포에 떠넘기는 구조를 제도적으로 막자는 취지다.
다섯째, 현장 기반의 다층 대화를 일상화하자. 지자체, 산업단지, 대학 등 지역 단위 분기별 테이블을 열어 프랜차이즈 종사자, 플랫폼 기사, 청년 아르바이트, 소상공인이 직접 의제를 올리고 제도가 이를 흡수하도록 해야 한다. 위로부터의 대화가 아니라 현장으로부터의 대화가 될 때 합의는 실행력을 갖는다.
여섯째, 이중구조 교정은 임금격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원·하청 단가, 교대 및 휴식 표준, 안전설비, 인력배치 등 생산방식의 표준을 함께 손봐야 한다. 20인 미만 사업체 비중이 높은 한국에서 안전, 휴식, 예측가능한 배치를 비용이 아닌 경쟁력의 전제로 삼아 지원 및 세제·조달, 평가에 일관되게 녹여야 한다.
최근 보도는 경고음을 거듭 울린다. 유가족이 제시한 사망 전 1주 80시간 근로 주장은 복수 언론 취재로 교차 확인됐고, 회사는 평균 주 44시간을 주장했다. 이런 공방을 끝낼 장치는 현장 중심의 실효적 감독과 대외 공시를 통한 투명성뿐이다. 조사와 별개로 산재가 취하됐다는 사실도 제도 개선의 정당성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공적 기준, 정밀한 기록, 명확한 책임의 사다리를 갖출 때 사건은 소모적 논란이 아니라 사회가 학습하는 자산이 된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견디는 힘이 아니라 거절할 권리, 기록된 시간, 연속된 휴식이다. 기업에는 값싼 초과노동이 아니라 예측가능한 운영과 안전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국가는 고용을 비용이 아니라 미래로 보는 관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절차의 신뢰가 제도의 성패를 가른다. 우리의 과제는 분명하다. 이제는 기록하고, 쉬고, 책임지는 제도를 만드는 일이다. 청년의 시간은 소모품이 아니다. 사회가 그 사실을 제도에 새길 차례다.
윤동열 건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한국생산성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