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 문화전(文畵展)]다툼에서 벗어나 어울림으로…진정한 인간의 과제
특징적 차이를 기호에 담아 현상들을 분류하는 것이 언어다. 차이 구분을 위해 언어는 긍정을 위해 부정한다. 배제(부정)를 통한 차이 확보(긍정)가 언어의 태생적 소명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다른 주장을 향한 전투적 배타성’이 내면화되어 있다. ‘자기(들)주장의 전면적 긍정’과 ‘타자(들) 주장의 전면적 부정’을 추구하는 태도가 인간 사회를 지배한다.
견해와 주장들 사이의 불화와 갈등은 언어의 ‘타자 배제’ 속성상 인간의 숙명이고 또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견해 차이의 완전한 제거는 불가능하다. 어떤 견해라도 다른 견해들을 조건으로 성립하기 때문이다. 다른 견해들을 완전히 제거하면 자기(네) 견해도 소멸한다. 인간의 과제는 ‘전면적 승리와 전면적 패배를 놓고 충돌하는 폭력적 견해 다툼’을 ‘견해 차이들의 호혜적 어울림’으로 바꾸는 것이다. 전자가 쟁론사회의 특징이라면 후자는 화쟁사회의 면모다. 원효의 화쟁사상은 그런 화쟁사회를 구현하려는 것이다.
화쟁사회를 구현하려면 인간 내면에 어떤 조건들이 확보되어야 할까? 모든 견해를 ‘다수 조건의 인과관계로 수립되며 변화에 개방되어 있는 잠정적 현상’으로 보는 관점은, 폭력적 쟁론의 치유에 유효하다. 그리고 ‘주장·견해의 조건적 타당성 및 조건적 부당성을 성립시키는 조건들과 그 인과(因果) 계열’을 식별해 내는 능력, 즉 원효의 화쟁 사상이 제시하는 ‘문(門) 구분의 능력’은, 배타적 쟁론을 호혜적 화쟁으로 바꾸기 위한 사유의 능력이다. 이러한 관점의 수립과 사유 능력의 계발은, 화쟁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인간 내면의 조건이다.
원효가 펼치는 ‘문(門) 구분의 사유’는 화쟁 사회를 구현해 가는 근원적이고도 현실적인 방법론이다. 그런데 ‘문(門) 구분의 사유’로 화쟁 사회를 일구어 가려면, 무엇보다도 차이 주체들이 쌍방의 차이를 ‘문(門) 구분의 사유’로 성찰하는 데 합의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견해 차이가 비합리적 양상으로 충돌하는 경우, 견해 주체들이 모두 ‘문(門) 구분의 사유’를 수긍하고 ‘문(門) 구분 사유의 합리성과 개방성’에 기꺼이 동참해야 한다. 그래야 화쟁 사회 수립의 길에 첫발을 디딜 수 있다.
차이 주체들이 ‘문(門) 구분의 사유에 의한 차이 성찰’에 공감하여 쌍방이 함께 참여하려면 무엇이 선행 조건으로 확보되어야 할까? 두 가지 조건이 있다. 하나는 ‘차이 주체들의 자기 개방’이고, 다른 하나는 ‘차이의 상호 존중’이다. 이때 ‘차이 주체’는 개인뿐 아니라 집단을 포함한다. ‘자기 개방’은 차이 주체들이 ‘자기 변화의 가능성’을 제한 없이 수용하는 태도다. ‘자기 변화에 대한 개방적 태도’와 ‘상호 존중’은 서로 맞물려 있다. ‘견해를 비롯한 자기 차이와 타자 차이는 모두 변할 수 있다’라는 전망을 공유할 수 있다면, 차이를 둘러싼 적대적 태도는 누그러질 수 있다. 그리고 차이 배타심과 적개심의 완화는 차이 주체들의 상호 존중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자기 변화를 수용하는 쌍방의 자기 개방 노력은 ‘차이들의 상호 존중’을 발생시키는 강력한 동력이다. 또한 ‘차이의 상호 존중’은 상대에 대한 신뢰를 통해 ‘차이 주체들의 자기 개방’을 돕는다. ‘차이 주체 쌍방의 자기 개방’과 ‘차이의 상호 존중’은 서로 지지하고 결합하면서, 자타의 차이들을 ‘문(門) 구분의 사유’로 성찰하고 개방적으로 대응하는 태도를 강화한다.
‘차이 존중’은 두 유형으로 구분하여 접근해야 한다. 하나는 ‘차이 관계의 호혜적 구조를 인지하고 수긍하는 데서 생겨나는 차이 존중’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의 견해·생각·감정·욕구·행위로 나타나는 차이들에 대한 존중’이다. 전자는 ‘차이 관계의 구조에 대한 존중’이고, 후자는 ‘현실 차이에 대한 존중’이다. 인간의 모든 관점과 이해, 사유와 감정, 욕구와 행위 및 경험은, 긍정적 방식이건 부정적 방식이건, ‘다른 것들과의 대비 및 관계적 얽힘’ 안에서 발생한다. 그런 점에서 인간과 세상의 구조는 호혜적(互惠的)이다. 우주의 구조 자체가 그러하다.
긍정과 부정 관계를 아우르면서 ‘서로를 발생시키는 은덕을 주고받는 구조’. -이것이 인생과 세계를 포괄하는 ‘관계의 호혜적 구조’다. 긍정 관계와 부정 관계를 다층적·다면적·상호적·역동적으로 펼치면서 유지되는 ‘호혜적 상관 구조’다. 이 구조적 진실을 ‘사실 그대로’ 알고, 서로의 더 좋은 이로움을 향해, 그 진실을 사유와 욕구 및 행위에 반영해 가려는 실천 노력. -이것이 붓다와 원효가 말하는 ‘지혜와 자비를 결합하는 수행’의 주요 내용으로 보인다. 인생과 세계를 포괄하는 ‘차이 관계들의 호혜적 구조’는 ‘구조적 특징’이지, 현실 세계의 차이들이 ‘서로 호혜적으로 응대하고 대접받는 것’은 아니다. ‘현실의 차이 관계’를 ‘호혜적 구조’에 상응하는 내용으로 바꾸려는 인간의 노력이 요청되는 이유다.
‘차이 관계의 구조에 대한 존중’은 ‘차이 관계의 호혜적 구조’에 대한 지적 인지와 수용에서 생겨나는 존중이지, ‘현실의 차이들’에 대한 존중이 아니다. 차이 관계의 현실은 ‘언어의 타자 배제 속성’과 ‘차이들에 관련된 이해(利害)와 손익 관계의 갈등 및 충돌’이 장악하고 있다. 따라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차이 현실에 대한 존중’을 화쟁의 선행 조건으로 요청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이에 비해, ‘모든 이해·감정·욕구·사유·행위는 차이들과의 대비 및 관계 구조 안에서 발생한다’라는 ‘차이 관계의 호혜적 구조’에 대한 지적(知的) 인지와 수용은 기대할 수 있는 현실적 가능성이다. ‘차이 관계의 호혜적 구조에 대한 존중’은, 현실의 차이 관계에 얽힌 복잡한 이해(利害)관계의 갈등 속에서도 수용할 수 있다.
차이 관계에 얽혀 있는 현실적 손익 갈등을 유지하면서도 지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 ‘차이 관계의 구조적 진실에 대한 존중’이다.
‘차이 관계의 호혜적 구조’와 ‘현실 차이들의 차별적 관계’는 상충하지만 공존하고 있다. ‘차이 관계의 구조’와 ‘차이 관계의 현실’을 일치시키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차이 관계의 호혜적 구조에 대한 지적 수용과 공감대 확산’은, ‘차이 관계의 구조’와 ‘차이 관계의 현실’을 상응하게 만드는 토대가 된다. ‘차이 관계의 구조에 대한 존중’과 ‘현실 차이들에 대한 존중’을 결합하는 고리이다. ‘차이 관계의 호혜적 구조에 상응하는 견해·사유·감정·욕구·행동’으로 옮겨 갈 수 있는 교량이다.
‘차이 타자에 대한 존중’은 현실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화쟁을 이루어가는 강력한 실마리다. 사회적 강자와 약자, 다수자와 소수자의 주장이 쟁론적으로 대립하는 경우, ‘문(門) 식별의 사유’를 쌍방에게 동시에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높은 자리를 점유한 강자와 다수자가 ‘문(門) 식별의 사유’를 수용하는 데 더 적극적이어야 균형이 잡힌다. 그러려면 ‘문(門) 식별 사유의 합리성과 이로움’에 대한 강자와 다수자의 확신이 상대적으로 더욱 굳건할 필요가 있으며, 그 확신은 ‘약자·소수자의 차이들에 대한 강자·다수자의 존중’으로 현실에서 선행적으로 표현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기울어진 운동장인 현실의 개인적 영역과 사회적 영역에서 ‘문(門) 식별 사유의 합리성과 이로움’에 대한 신뢰를 구성원 모두에게 확산시켜 가는 현실적 방식이다.
글=박태원 인제대 석좌교수(화쟁인문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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