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AI와 회계의 만남: 기술 너머의 신뢰

2025-11-17     경상일보

최근 삼일회계법인이 인공지능이 기업 장부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AI 감사 플랫폼’을 도입했다. AI가 수천만 건의 거래 데이터 중 이상 징후를 자동으로 탐지하면, 감사인은 그 분석 결과를 토대로 더 깊이 있는 판단과 검증을 수행한다. 이는 회계의 미래를 앞서 보여주는 시도이자, 산업 변화의 흐름을 읽고 신뢰 기반 감사의 새 표준을 제시한 결정이다. AI 기술을 회계 감사에 접목하는 것은 미래 회계의 표준이자,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변화이다.

해외에서도 딜로이트가 AI를 활용해 재무제표의 문장형 주석까지 읽어내며 회계부정 가능성을 사전에 예측하는 모델을 상용화했다. 이제 AI는 사람이 놓치는 패턴을 찾아내고, 기업의 재무제표 속 작은 이상 신호까지 포착한다. 회계사들이 몇 주 걸리던 분석을 몇 분 만에 끝내는 기술 진화는 놀랍다. 그러나 놀라운 기술의 진화 앞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기술이 과연 신뢰를 대신할 수 있는가?”

AI는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지만, 신뢰를 판단하지는 못한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숫자를 다루는 사람은 진실을 감출 수도 있다. 회계의 본질은 기술이 아닌 윤리이며, 숫자가 아닌 책임의 문제에 있다. 회계와 외부감사는 금융과 경제의 신뢰성을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다. 정확한 회계는 투명한 자본시장을 만들고, 그 신뢰가 다시 기업의 가치를 높인다.

올해 회계의 날을 맞아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감사 품질을 강화하고 회계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개편안을 내놓았다. 저가 수임 경쟁을 줄이고 감사인을 ‘가격’이 아닌 ‘품질’ 중심으로 평가하는 제도를 추진하며, 회계감리 제도에서는 과징금 등 제재를 강화하면서도, 조치대상자의 방어권은 충분히 보장한다. 이는 단순한 규제 강화를 넘어, 공정한 절차 속에서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다. 결국 기술, 제도, 윤리의 균형이 핵심 메시지다.

한편 같은 날 열린 간담회에서 업계는 현장의 우려를 전했다. “AI 중심으로 감사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회계법인 간 격차 해소와 AI 투자 유인을 높여 달라.” 대형 회계법인은 이미 AI 감사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중소 회계법인은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 기술 격차는 회계 품질의 격차로, 나아가 금융 시장의 신뢰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일부 회계법인의 선제적 기술 도입은 업계 변화를 이끌며, 회계 분야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 문제는 울산에도 낯설지 않다. 제조업에서 ‘스마트 산업’ 도시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울산 역시 데이터 신뢰라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공장 곳곳의 센서가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전송하고 생산 라인은 AI가 제어한다. 그러나 아무리 공정이 자동화돼도 회계의 기본은 여전히 사람의 손끝에 있다. 부정확한 데이터 입력 하나가 생산성 지표를 왜곡하고 회계 오류가 곧 투자자 신뢰 붕괴로 이어진다. 디지털 전환의 성패는 기술이 아닌 데이터의 신뢰성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울산 기업들이 AI를 통해 생성된 데이터를 회계에 사용하더라도, 회계 판단과 책임의 최종 주체는 여전히 인간이다.

AI는 효율을 높이지만 윤리를 대체할 수는 없다. AI가 회계 부정을 감시해도 인간의 탐욕까지 제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신뢰의 몫은 언제나 인간에게 남아있다. 회계사는 데이터를 해석하는 전문가이자, 신뢰의 마지막 보루다. AI가 숫자를 계산할 때, 인간은 그 의미를 해석해야 한다. 회계의 품질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며, 신뢰는 알고리즘이 아니라 문화의 산물이다.

“투명하고 신뢰받는 회계, 생산적 금융시장, 도약하는 우리경제.” 이 문장은 기술이 지배하는 시대에 인간의 역할을 되묻는 선언이다. 회계의 신뢰는 결국 사회의 신뢰다. 신뢰가 사라진 데이터는 단순한 숫자 조각일 뿐, 미래를 설명하지 못한다.

울산이 지속가능한 산업도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생산 효율을 넘어 기업의 투명성과 신뢰가 함께 성장해야 한다. 기술이 아니라 신뢰가 산업의 생태계를 지탱한다. AI가 회계를 감시하고, 인간이 신뢰를 지킬 때, 그때 비로소 기술은 윤리가 된다.

김진욱 건국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