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울산, AI로 다시쓰는 데이터의 도시사(都市史)
바다는 울산의 시작이었다. 고래의 노래가 울려 퍼지던 바다는 이 도시의 생명선이었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며 지식을 새겨 넣은 최초의 무대였다.
그리고 이제, 데이터가 울산의 새로운 바다가 되고 있다. 고래의 도시로 알려진 울산은 산업과 기술, 그리고 사람의 힘으로 AI와 데이터의 도시로 진화하고 있다.
바다 위에서 산업을 일군 도시가, 이제는 데이터의 바다 위에서 미래의 항로를 열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월, 72만 시민이 함께한 울산공업축제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산업화의 심장으로 반세기를 달려온 울산은 이제 ‘과거의 영광을 기념하는 도시’를 넘어, 데이터와 인공지능(AI)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도시로 항해를 시작했다.
울산의 이야기는 놀랍게도 선사시대에서 출발한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반구천 암각화에는 고래와 사냥 장면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단순한 벽화가 아니라, 인류 최초의 데이터 기록이었다. 바위 위에 남겨진 지식의 흔적은 ‘데이터 도시 울산’의 원형이었으며, 이 데이터의 유전자는 산업화 시대를 거쳐 오늘날 AI 혁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울산은 그 연속선 위에서 다시 한 번 진화하고 있다. 오는 11월19일부터 3일간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2025 대한민국 지방시대 엑스포’는 울산의 이 새로운 도전을 온 나라에 보여줄 무대가 된다. 울산은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 AI 수도’로 도약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할 것이다.
핵심은 AI 인프라의 집적이다. 미포국가산업단지에 SK와 AWS가 7조원을 투자해 건립 중인 103㎿급 AI 데이터센터는 2027년 11월 준공 후 2029년 2월까지 103㎿ 규모로 완공을 목표로 한다. 향후 30년간 약 25조원의 경제효과와 7만8000명의 고용 창출이 기대되는 이 거대 프로젝트는, 울산 산업 전반에 AI 학습·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며 동북아 최대의 AI 데이터 허브로 성장할 것이다.
여기에 소버린 AI 집적단지와 수중 데이터센터가 더해진다. 소버린 단지는 산업·교육·연구·생활이 긴밀히 연결된 미래형 산학연 클러스터이며, 수중 데이터센터는 해저 냉각 시스템을 통해 탄소배출을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다. 데이터와 환경을 동시에 고려한 울산의 실험이 시작된 것이다.
또한 울산은 최근 중소벤처기업부의 ‘지역 주도형 AI 대전환 사업’과 ‘제조데이터 활성화 사업’에 연이어 선정되며, AI 산업 생태계 조성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이를 통해 지역 제조 현장의 데이터 표준화와 AI 솔루션 보급이 본격화되고 있으며, 산학연 협력과 인재 양성 기반도 한층 강화되고 있다.
행정 시스템 역시 속도를 맞추고 있다. 울산시는 10월 ‘AI수도추진본부’ 신설을 공식화하며 조직 개편 조례를 입법 예고했다. 내년부터는 AI산업전략과와 미래첨단도시과가 AI 정책, 인재 양성, 산업 지원을 전담하게 된다. 산업수도에서 AI 수도로의 전환을 향한 울산의 의지가 행정체계로 제도화된 셈이다.
울산공업축제가 산업과 기술, 그리고 시민의 힘으로 과거의 역동성을 기념했다면, 오는 11월 대한민국 지방시대 엑스포는 AI를 축으로 한 울산의 미래를 선보이는 자리가 될 것이다. 반구천 암각화에서 시작된 울산의 ‘데이터의 도시사(都市史)’는 이제 AI라는 언어로 다시 쓰이고 있다.
이제 울산은 바위 위의 기록을 넘어, 데이터 위에 미래를 새기고 있다. 산업의 기억과 기술의 진화를 하나로 엮어, 세계가 주목하는 ‘대한민국 AI 수도’로 항해를 시작한 것이다. 그 항해의 끝에는, 산업의 도시를 넘어 ‘AI 도시 울산’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기다리고 있다.
조영신 울산테크노파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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