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형제복지원’ 판결, 국가책임의 문 다시 연 사법의 용기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어두운 국가폭력의 흔적이다. 1975년 내무부 훈령 410호를 근거로 무고한 시민들이 ‘부랑인’이라는 이름으로 강제 수용됐고, 그 안에서는 감금·강제노역·폭행·성폭력·아사와 질병으로 인한 사망까지 이어졌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망자만 551명. 이는 단순한 복지시설의 일탈이 아니라, 국가권력과 민간 시설이 결탁해 만든 구조적 폭력이었다. 그럼에도 피해자들의 구제는 수십 년간 지연됐다. 피해자 대부분이 국가를 상대로 권리를 행사할 정보도, 법률적 수단도 갖추지 못한 채 침묵을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전환점은 2022년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이었다. 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로 공식 규명하고 국가의 사과와 피해 회복을 권고했다. 이 결정은 국가의 오랜 소멸시효 항변을 무력화시킨 객관적 장애 사유의 공적 확인이었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오랫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한계가 공식 인정된 것이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2025년 대법원은 세 차례의 중대한 판결을 내렸다. 첫 번째는 3월27일 판결로서, 훈령 410호에 근거한 부랑인 단속과 강제 수용이 위법한 공권력 행사였음을 명확히 인정했다. 당시 국가가 형제복지원의 운영 전반을 관리·감독할 의무가 있었음에도 이를 방기했다는 점도 확인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국가적 성격을 사법부가 처음으로 명시한 판결이었다.
두 번째는 7월3일 판결이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국가뿐 아니라 부산광역시의 공동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했다. 부산시는 1975년 ‘재생원 설치 조례’에 따라 형제복지원과 위탁 계약을 체결하고 단속된 시민들을 수용하도록 했다. 이는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시설 운영의 틀을 제공하고 감시 의무를 부담했음을 의미한다. 대법원은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도 이 구조적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과거사 사건에서 지방정부의 책임을 최초로 인정한 판결로서, 선감학원 등 유사 사건에 중대한 선례를 제공했다.
그리고 11월13일, 사법부는 또 하나의 장벽을 허물었다. 바로 1975년 훈령 이전 수용 피해에 대해서도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기존에는 훈령 발령 이후를 국가 책임의 시점으로 삼아 왔지만, 대법원은 “국가가 1950년대부터 부랑인 단속을 지속해 왔고, 1975년 훈령은 그 정책의 연속과 확장”이라고 보았다. 이 판결의 법리적 혁신은 국가 책임의 기점을 행정 문서의 발행일이 아닌 실질적인 정책 집행의 시작 시점으로 해석했다는 데 있다. 공권력 행사의 위법성을 형식적 법령의 존재 여부가 아닌, 실질적인 통치 행위와 정책적 기조로 판단한 것이다. 국가 정책의 기조가 인권침해의 구조적 원인이었다면, 그 기조가 형식적 문서로 체계화되기 이전의 행위도 국가 책임 범주에 포함된다는 법리다.
사법부의 이러한 판단은 행정부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냈다. 법무부는 8월과 9월 형제복지원 및 선감학원 사건 관련 소송 71건에 대해 상소를 일괄 취하했다. 이는 단순한 소송 전략의 변경이 아니라, 국가가 더는 책임 회피의 논리를 유지할 수 없음을 인정한 정치·행정적 선언이었다.
다만 과제도 남아있다. 현재 피해자에 대한 배상액은 수용 기간 1년당 약 8000만원 수준이다. 강제노역과 폭행, 성폭력, 장기 구금 등 복지원 내 인권침해의 폭력성을 고려하면 결코 충분한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다.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 많은 피해자들을 위한 특별법 제정도 시급하다. 특별법은 피해 사실의 신속한 인정, 위자료 상향, 의료·심리 지원 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형제복지원을 넘어 선감학원 등 유사 과거사 사건의 피해자 구제에도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다. 국가의 역사적 책임은 훈령이나 법령의 제정 시점으로 구획될 수 없다. 그것은 권력의 실제 작동과 피해의 연속성 속에서 판단돼야 한다. 대법원이 이를 인정한 것은 뒤늦었지만 의미 있는 진전이다.
이나라 법률사무소 율빛 대표변호사 울산대 법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