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반구천 암각화’, 세계유산 인증과 함께 시작된 책임

2025-11-19     경상일보

유네스코 세계유산 ‘반구천의 암각화’ 등재 인증서가 울산에 전달됐다. 18일 열린 등재 인증 기념식은 울산이 지켜온 ‘반구천의 암각화’의 가치가 국제적으로 공인됐음을 확인하는 자리이자, 세계유산을 품은 도시로서 새로운 책임을 자각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과제는 이제부터다. 세계유산 등재는 끝이 아니라, 본격적인 보존과 활용 체계를 구축해야 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날부터 이틀간 열리는 국제학술대회는 반구천 암각화의 가치를 알리고 보존 방향을 구체화하는 자리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반구천 암각화가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 신앙과 생활의 흔적을 담은 복합유산임을 강조했다. 특히 기후위기와 개발 압력이 동시에 가속되는 현 상황에서, 지형과 생태 환경을 유산 가치의 일부로 인식하는 관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노르웨이 등 해외 사례는 풍화 속도를 늦추는 과학적 관리가 효과적임을 보여주었고, 이는 반구천 보존에도 적용 가능한 실질적 대안으로 제시됐다.

울산이 추진해온 사연댐 수문 설치, 3D 레이저 스캐닝 기반의 미세환경 모니터링은 국제적 기준에도 부합하는 선제적 조치로 평가됐다. 앞으로는 수문학적 환경 관리와 암석 표면 변화의 상시 관측 같은 과학적 접근을 정교하게 결합해야 한다. 여기에 디지털 복원과 디지털 박물관 구축은 노출 문화재의 취약성을 보완하고, 교육·연구 기반을 확장하는 실질적 수단으로 제안됐다.

지역공동체의 역할도 중요하다. 세계유산은 행정기관만의 관리 대상이 아니다. 생태문화 탐방로, 유산 축전 등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활성화될 때 보존과 지역 발전이 함께 가능하다.

교육 체계 역시 달라져야 한다. 강현숙 동국대 명예교수는 기조강연을 통해,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교육될 15종 중·고교 교과서의 30%에서만 ‘반구대 암각화’를 다루고 그마저도 시대 구분 오류·설명 혼재·명칭 오해가 반복되는 현실을 짚었다. 그러면서 단일 유산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만큼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을 함께 아우른 ‘반구천의 암각화’로 교과서를 수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반구천 암각화는 단지 선사시대의 흔적이 아니라 인류의 지혜와 환경 적응의 역사를 품은 공동의 유산이다. 과학적 관리, 공동체 참여, 교육 확장, 디지털 해석이라는 네 가지 축을 중심으로 울산이 세계유산 관리의 모범을 제시해야 한다. 세계가 인정한 유산을 미래 세대에 온전히 넘기는 일, 이제 그 책임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