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통계가 말하는 불편한 현실, 울산 아동이 보내는 SOS
11월19일은 ‘아동학대 예방의 날‘이다. 정부가 아동의 건강한 성장을 보장하고 학대를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지정한 법정기념일이나,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암울하다. 울산에서도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매일같이 상처 입고, 두려움 속에 떨고, 심지어 목숨을 잃는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4 아동학대 주요통계’를 보면 울산의 상황은 특히 심각하다. 지난해 울산에서 접수된 아동학대 의심신고는 무려 1639건. 인구가 더 많은 광주의 1.8배, 인구 235만명 규모의 대구와 비슷한 수준이다. 아동학대 신고가 많다는 사실 자체가 지역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 중 절반이 넘는 889건이 실제 아동학대로 판정됐다는 점이다. 울산지역 아동 1000명당 피해아동 발견율은 5.41%로 전국 1위다. 전국 평균 3.57%를 훌쩍 넘는 ‘압도적 불명예’다. 학대의 80% 이상은 부모에 의해 발생했다. 아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줘야 할 존재가 오히려 가장 위험한 가해자로 돌변하는 현실이다.
지난해 울산에서는 아동학대로 또 2명의 아이가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도 아동학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10월말에는 “TV 리모컨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소한 이유로 10대 자녀를 상습 폭행한 40대 남성이 구속됐고, 바이올린 연주가 미흡하다고 아이를 꼬집고 소리치며 정서·신체학대를 반복한 방과후학교 교사는 벌금형을 받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아동들이 정서적, 신체적, 방임 등 다양한 형태의 학대에 조용히, 그리고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있다. 가정과 학교, 일상 어느 공간도 아이들에게 온전히 안전하지 않은 현실이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한다.
지역사회의 보호체계도 허술하다. 최근 4년간 울산에서 가해 부모를 피해 ‘비밀 전학’을 해야 했던 아동이 72명이나 된다는 통계도 있다. 경찰과 공무원이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아이를 ‘숨겨서’ 이동시켜야 하는 상황 자체가 이미 비상사태인 것이다.
아동학대는 한 아이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세대와 사회 전체를 위협하는 치명적 폭력이다. 아이를 지키지 못하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아동학대 예방의 날’이 무색해지기 전에, 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작동하는 보호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에 적합한 사회를 만들고 있는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