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과정평가형 자격제도를 다시 바라보다
필자는 지면을 통해 ‘국가기술자격제도의 변화와 의미’라는 주제로 기고문을 쓴 바 있다. 당시 필자는 기술 강국으로 성장해온 대한민국이 숙련 기술인의 양성과 자격 검증 방식을 어떻게 전환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과정평가형 자격시험 제도의 취지와 필요성에 대해 다뤘다. 이후 몇 달이 지난 지금, 과정평가형 자격제도를 둘러싼 일부 오해와 과도한 비판이 언론과 온라인 공간을 통해 유포되는 상황을 보며, 제도에 대한 신뢰를 되찾기 위한 진지한 성찰과 보완의 필요성을 느껴 다시 이 자리에 서게 됐다.
최근 일부 기사에서는 “과정평가형은 시험 없이도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는 식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명백히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이다. 과정평가형 자격시험은 교육과정 이수 + 내부 평가 + 외부 평가를 모두 통과해야 자격증이 발급된다. 이 중 외부 평가는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직접 시행하는 평가로서,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다. 즉, 단지 교육에만 참여했다고 해서 자격이 부여되는 것이 아니다. 이 제도는 특히 기존 검정형 자격시험에서 요구되던 응시 자격 요건(학력·경력 등)이 없어, 직업 전환을 희망하는 중장년층, 외국인 근로자, 경력단절 여성 등에게 ‘문턱을 낮춘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다. 그런데 이러한 개방성이 ‘자격 기준의 완화’로 오인되면서, 제도의 본질이 왜곡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유튜브 채널이나 블로그에서는 “과정평가형 자격증은 쉽게 딸 수 있다” “검정형보다 수준이 낮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과정평가형 제도는 6개월에서 1년 가까운 교육과정과 반복적 평가를 통해 훈련생의 역량을 체계적으로 쌓도록 설계돼 있다.
다만, 제도 시행 초기에는 다음과 같은 한계점이 있었다는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교육기관 간의 평가 기준 편차, 내부 평가의 관대함에 따른 형평성 문제, 산업현장과의 간극 등은 개선이 필요한 과제로 존재했다. 이러한 점은 제도의 구조적 결함이 아니라 운영 방식에서 비롯된 미숙함이며, 점진적인 보완을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다. 현장에서 이 제도에 참여한 수많은 교육생과 지도자의 경험을 살펴보면, 과정평가형 제도는 단순한 자격 취득의 수단을 넘어, 실질적 실무 역량을 길러주는 도구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 필자가 지도한 중장년 훈련생 A씨는 기계가공분야에서 전직을 희망하던 50대 후반의 남성이었다. 그는 자격증 하나 없이 20년 가까이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가, 과정평가형 제도를 통해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고 실무 적응력도 키웠다. 외부 평가를 통과하고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현재 중소 제조기업에 채용돼, 생산설비 유지보수 담당자로 안정적인 제2의 커리어를 시작하고 있다. 이처럼 과정평가형 제도는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두 번째 기회를 주는 제도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시험 성적표로는 평가할 수 없는 ‘인간 성장의 여정’이기도 하다.
제도가 더 성숙해지기 위해선 제도 설계자, 운영자, 평가자, 그리고 국민 모두의 책임 있는 참여가 필요하다. 제도의 내실화를 위해 반드시 고려돼야 할 방향이다. 우선 산업 현장의 변화 속도에 비해 NCS 개정 주기가 더디다.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교육 내용이 낡은 정보가 돼버린다. 종목별로 현장 전문가와 평가자가 공동 참여하는 실무 기반 모듈 재정비 작업이 시급하다. 또 내부 평가가 지나치게 형식화되거나, 평가자 간 기준 차이가 크면 제도에 대한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외부 평가 위원의 역량 향상과 객관적 피드백 시스템이 함께 작동돼야 한다. 특정 기관에서 유독 높은 합격률이 나타난다면, 그 원인을 분석하고 편차의 원인을 제도적으로 제어할 장치가 필요하다. 자격취득자와 기업 간 미스매치를 줄이기 위해 산업체가 자격기준 개발 및 평가 설계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자격 시험의 공정성을 위해 CCTV뿐 아니라 AI 기반의 평가 분석 시스템을 통해 감독의 신뢰도 또한 제고할 수 있다.
과정평가형 자격제도가 ‘공정한 기회’와 ‘실력 중심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작은 디딤돌이 되길, 그리고 그러한 믿음이 제도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가기를 소망한다.
박기웅 한국폴리텍대학 석유화학공정기술교육원 석유화학공정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