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찰 보여줘도 의심” 억울한 조사원들
“학력, 직업, 결혼 여부까지 너무 많이 물어보길래 순간 혹시나 싶었죠. 조사원이라고 명찰을 보여줬지만 요즘 세상이 워낙 험하니까요”
울산 북구에 사는 40대 A씨는 최근 집으로 찾아온 인구주택총조사 조사원을 끝내 돌려보내고 인터넷 조사를 선택했다. 집 문 앞에서 이어진 면접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확인해야 할 항목이 계속되자 불안감이 들었다는 설명이다.
A씨는 “두세 가지만 묻고 끝날 줄 알았는데 학력·직업 등 한참을 물어보더라”며 “명찰을 보고 조사원이라는 건 알았지만 혹시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18일까지 진행된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이처럼 조사원을 피싱으로 의심하거나 주저하는 사례가 곳곳에서 나타났다. 조사 방식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인터넷 응답을 우선 진행하고, 미참여 가구에 한해 조사원이 방문해 면접조사를 실시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조사 항목은 50여개에 달한다. 가구 구성, 주거 형태, 소득·경제활동 등 민감한 내용이 포함돼 있어 사전 안내가 충분하지 않으면 응답자의 부담이 커지기 쉽다.
최근 피싱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조사원이 명찰과 공문을 제시해도 불안을 완전히 떨치기 어렵다는 반응도 나온다. 이에 국가데이터청은 조사원들에게 ‘현장에서 일부 항목은 상황에 따라 무리하게 유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의 안내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조사원들은 “명찰을 달고 공문까지 보여줘도 ‘정말 구청에서 나온 게 맞냐’며 확인 전화가 계속 온다”며 “문을 열지 않거나 집을 비워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하면, 20일부터 다음 달 22일까지 진행되는 농림어업총조사의 난도는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농림·어업 종사자는 고령층 비중이 높아 인터넷 응답이 어려운 경우가 많고, 생업 특성상 조사원이 방문하는 대부분의 시간대에 집을 비워 두는 일이 잦다. 피싱 우려까지 겹치면 조사 거부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락 수단이 제한적인 구조도 문제로 꼽힌다. 미완료 가구라도 전화번호는 개인정보에 해당해 조사원이 사전 연락을 할 수 없다. 방문 시간 조율이 불가능해, 주민이 부재 중이면 번호를 남겨 놓거나 재방문 외에는 대안이 없다.
이에 현장에서는 우편 안내 강화, 인증 방식 다변화 등 대체적 접근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지자체 담당자는 “대면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지금 같은 환경에서는 조사 자체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대상자가 안심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안내 채널을 넓히고 인증 절차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은정기자 k2129173@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