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샘의 시가 있는 교실 (3)]그냥 ‘살아 있다는 것’

2025-11-24     경상일보

특별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 그 학생은 공부를 특별히 잘하는 것도 아닌, 운동이나 예능에 두각을 드러내지도 않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래서인지 반에서 눈에 띄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잘하는 게 없어”라고 자주 중얼거렸다. 그런 아이가 어느 날 국어 시간에 아래의 시를 칠판에 써 놓았다.

‘바람 불어 흔들리는 게 아니라, 들꽃은 저 혼자 흔들린다. 누구 하나 눈여겨보는 사람 없지만 제자리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다 보니 다리가 후들거려서 떨리는 게다. 그래도 …… 들꽃은 행복했다. 왠지 모르게 행복했다’

-이정하 <살아 있다는 것> 중에서

시 낭독이 끝나자, 교실엔 잠시 정적이 흐르고 조용한 숨소리만 감돌았다. 필자는 시를 소개한 아이에게 물었다.

“이 시가 마음에 남은 이유가 뭐야?”

“제가 요즘 잘하는 게 없다고 생각돼서 자꾸 우울했는데, 들꽃은 누가 알아봐 주지 않지만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 애쓰잖아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하니까…. 저도 그냥 제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존재의 안간힘’

“얘들아, 들꽃은 누가 알아봐 주지 않아도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 애쓰고 있어. 너희도 그렇지 않을까? 매일 공부하고, 친구들과 지내는 그 모든 순간이 들꽃처럼 ‘안간힘’을 내는 거야.” 아이들은 무언가 깨달은 듯 조금씩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시에서 들꽃이 행복하다고 말한 이유는 뭘까?” 한 아이가 대답했다.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살아있는 것 자체가 소중하니까요.” 시를 소개한 아이도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의미 있는 것 같아요.”

“그래 얘들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속담 알아?”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우리 조상님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거야.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 있는 지금 이 삶이 소중하다는 걸. 그 평범한 일상 속에 이미 큰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말이야.”

필자의 말이 끝나자 아이들은 시 공책에 자신들의 생각을 적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다 뭔가 특기가 있는데 나만 없는 것 같아서 속상했는데, 그냥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말이 위로가 되었다.’ ‘들꽃이 누가 안 봐줘도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게 나 같다. 나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나도 가끔씩 너무 괴로울 때 난 왜 살아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 시를 읽으니 내가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가끔 부모님과 싸우고 나서 혼자 방에 있을 때 나만 이렇게 힘든가라는 생각을 했는데, 들꽃도 혼자 흔들린다고 하니 위로가 된다.’



‘존재 자체의 가치’

며칠 후,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반 친구들이 시를 소개했던 아이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그 친구가 아이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너도 들꽃처럼 흔들려도 괜찮아’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비로소 인정하게 된 아이가 이제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그 소중함을 전해주고 있던 것이다.

필자 역시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흔들리고 떨리는 것이 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제자리를 지키려고 애쓰는 안간힘의 결과라는 것. 그리고 그런 노력 자체가 이미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을. 누군가 “나는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어”, “나는 살 가치가 없어”라고 말할 때, “그런 소리 하지 마”라기보다 “네가 매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고 소중해”라고 말해주자. 그 사람의 마음에 들꽃같은 작지만 따뜻한 행복이 퍼질 것이다. 오늘도 여기저기서 다리가 후들거리게 안간힘을 쓰고 있을 많은 사람들에게도 조용한 응원을 보낸다.

김미성 외솔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