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방어진 상인들의 회축제 실험

2025-11-25     김은정 기자

올해 방어진 회축제는 동구청 예산 한 푼 없이 치러졌지만, 현장은 지난해와 다르지 않은 활기로 들썩였다. 지난 15일 방어진항 일대는 회를 사려는 방문객과 대방어 해체쇼를 보러 온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방어진 상권은 지난 6월부터 ‘회축제학교’를 열어 축제 운영과 상권 활성화를 함께 고민해왔다. 전국 해안 관광지 곳곳에서 불친절과 바가지 논란이 잇따르는 가운데, 방어진 역시 예전 방식으로는 버티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퍼져 있었다.

축제학교에서는 최근 2년간 제기된 민원 사례를 공유하고, 상인들이 직접 개선안을 내놓는 시간을 가졌다. 내부적으로는 ‘바가지 근절’을 규약처럼 정했고, 디지털 결제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 상인들을 서로 돕는 모습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이 변화는 축제 운영 곳곳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올해 총예산은 1500만원, 그것도 국·시비뿐이었고 구비는 전혀 없었다. 부스 설치비 500만원과 온누리상품권 환급 행사 1000만원을 제외하면 사실상 빈손이었다. 하지만 상인들은 ‘우리 손으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운영의 전 과정을 직접 맡았다.

행사 인력과 비품, 안내 동선까지 자체적으로 마련했고, 50명이 참여한 단체 채팅방에서는 실시간 상황 공유가 이어졌다. 전날까지 서로를 격려하는 메시지가 끊이지 않았고, 대방어 해체쇼에 필요한 100만원 상당의 대방어 2마리도 상인들이 전액 부담했다.

‘우리 이름을 걸고 우리가 만들자’는 분위기는 과거 방어진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상인회 내부에서는 규정 위반 시 징계 논의가 나올 정도로 자정 의지가 강했고, 공동어시장 상인들까지 참여하면서 축제 범위도 넓어졌다.

활어센터 옆 식당들은 초장 제공 인력을 따로 배치했고, 공동어시장 상인들은 가자미구이를 직접 구워 내놓으며 축제에 힘을 보탰다.

올해 축제는 결국 ‘상인들의 힘’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보여준 실험이었다. 이제 과제는 이 경험을 어떻게 다른 지역에서도 참고할 수 있는 모범 사례로 만들 것이냐다.

방어진항이 단순한 회거리가 아니라 울산을 대표하는 관광 브랜드로 자리 잡으려면, 꼭 많은 예산이나 행정 주도 행사에만 의존할 필요는 없다. 예산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스스로 준비하고 참여하며 만들어가는 축제야말로, 형식적이고 보여주기식 행사를 넘어서는 진짜 의미 있는 지역 축제를 보여주는 사례다.

예산난에 시달리는 많은 지자체가 형식적인 행사 유치에만 머무르지 않고 교육과 역량 강화에 집중해 주체적이고 지역성이 살아 있는 축제들이 더 많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김은정 사회문화부 기자 k2129173@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