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면주 칼럼]청년들의 창문 너머에는

2025-11-25     경상일보

네팔은 에베레스트 등정의 관문, 세르파의 나라, 가난하지만 행복지수가 높은 청정 국가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이 나라에도 사회적 부조리에 맞서는 정의롭고 용기 충만한 젊은 영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16세 네팔 청년 아비쉬카르 라우트의 “네팔 우리의 어머니 이 땅은 우리를 낳고 길러줬습니다. 그 대가로 무엇을 요구했습니까. 단지 우리의 정직 성실한 노력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부정의 사슬에 묶여 눈앞의 기회를 놓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실업의 사슬에 묶여 있고 정치 정당들의 이기적인 게임에 갇혀 있습니다” 라는 요지의 연설은 에베레스트산의 차가운 폭포수가 돼 세계 청년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네팔을 필두로 개도국뿐만 아니라 선진국인 프랑스, 미국 등의 청년들도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기성체제에 대해 저항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리의 청년들도 예외는 아니다. 국가와 언어는 달라도 핵심 메시지는 놀랍도록 일치한다.

네팔은 부패한 관료와 정치에 대해 존엄한 노동, 제도적 공정성, 청년 기회의 보장을 요구하는 일종의 사회혁명으로 진화하고 있다. 멕시코는 정치 폭력, 마약 카르텔, 부패 경찰, 극심한 소득 불평등 타파를 주장한다. 인도네시아는 정치·경제·노동 시스템은 여전히 군부·엘리트 중심 구조여서 이의 탈피를 외치고 있다. 프랑스는 “왜 기성세대의 복지를 위해 우리의 미래를 희생하라 하는가?” “청년의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퇴직 연령은 늘어난다”라며 세대 간 불평등의 장기화에 대한 새로운 사회계약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청년 세대는 “월세, 대출, 의료비 때문에 인생을 시작하지도 못한다.”라며 강력한 자본주의의 비판자로 등장했다. 32세의 민주사회주의자 ‘조란 맘다니’가 자본주의의 심장인 뉴욕에서 시장으로 당선된 것은 이를 방증하고 있다. 일본은 “평생 비정규직 세대를 만든 것은 누군가의 책임인가”라고 외치며 투표·소비·직장 선택 방식으로 근본적 변화를 드러내고 있다. 한국은 “낡은 이념 싸움 그만하고 집값, 사교육, 지방 소멸 등의 현실 문제를 해결하라” “세대 부담 구조를 다시 설계하라”며 정치·언론·노동·교육·부동산 등 한국 사회 기득권 시스템 전체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각기 나라의 사정에 따라 메시지가 다르긴 하지만 공정성의 회복, 기회의 재분배, 주거·노동의 인간화, 기성세대 정치의 무능·부패에 대한 환멸, 디지털 네이티브의 새로운 저항 방식 등은 공통된다. 이 중에서 청년들이 가장 문제 삼는 것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집단이 문제 해결 능력을 잃었다는 인식이다. 네팔의 국회 의사당이 불타오르는 모습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치가 본래의 영역인 사회의 문제 해결 능력을 상실하고, 정권과 기득권 유지를 위해 더 많은 문제를 양산해 사회를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하는 현실에 청년들은 분노하고 있다.

비방과 조롱, 욕설, 고함이 난무하는 정치인의 언어 수준, 후안무치한 내로남불의 일상화, 돈과 권력, 자리를 위해서는 어떤 비윤리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는 적나라한 탐욕의 정치판, 이 판에 줄을 대고 자신의 밥그릇도 못 챙기는 언론, 검찰과 사법부. 이를 당연시하며 동서로 편을 갈라 살아가는 기성세대 등의 작태가 젊은 영혼을 도를 넘는 혼란스러움으로 몰아가고 있다. 급기야는 김만배 등 대장동 일당들에 대해 검찰이 항소 포기를 하는 난장판이 벌어지고 말았다. 정의의 수호자인 검찰과 법무부가 범죄자들 편에 서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여당의 정치인들이 범죄인들을 옹호하는 스탠스를 취해 국민의 감정에 2차 가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청년들은 이런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장래를 결정하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청년들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진흙탕에 뒹구는 괴물들의 싸움판일지도 모른다. 청년의 아픔 해결은 뒷전이고, 극단적인 정쟁으로 법치와 민주주의의 파괴가 도를 넘게 되면, 한국의 청년 세대 역시 기성정치 전체를 삼키는 해일이 될 수도 있다. 세계 청년들의 외침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경고임을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신면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