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200년된 마을 수호나무 말라죽어 착잡”

2025-12-01     김은정 기자
“수호목이 죽는걸 보면서도 아무것도 못했던 게 마음이 쓰입니다.”

울산 북구 신천동 제내마을 입구에서 200년간 수호목 역할을 해온 곰솔이 재선충 감염으로 사실상 고사했다. 마을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나무가 불과 한달 사이 급격히 말라붙자 주민들은 황당함과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현장에서 확인한 곰솔은 이미 전체 가지가 갈색으로 변한 상태였다. 세 갈래로 갈라진 굵은 줄기에는 올가을 북구가 실시한 방제 흔적인 나무 주사용 링거 두 개가 그대로 매달려 있었지만, 솔잎은 대부분 말라붙어 회생이 어려워 보였다. 나무 주변에는 바스러진 갈색 솔잎이 두껍게 쌓여 있었고, 나무 아래 정비된 공간에서는 최근까지 주민들이 관리해온 흔적만 남아 있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나무의 이상 징후는 지난 9월 처음 발견됐다. 한 주민이 가지 한쪽이 마른 것을 발견해 북구에 신고했고, 북구는 약제 투입과 나무 주사 등 방제 조치를 진행했다. 그러나 10월 들어 마른 가지가 빠르게 다른 부분까지 확산했고, 한달도 되지 않아 솔잎 전체가 갈색으로 변했다. 주민들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멀쩡했고 여름에도 잎이 무성했는데 너무 갑작스러웠다”고 말했다.

북구는 해당 나무가 재선충 감염 판정을 받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북구 관계자는 “지난 6월에도 점검과 방제를 했고, 가을에도 주민 신고를 받고 즉시 조치했으나 감염 진행 속도가 매우 빨랐다”며 “대부분의 노거수들은 인근 나무들보다 크고 오래돼 재선충에 노출되기 쉬운 조건”이라고 했다.

제내마을 주민들에게 이 곰솔은 단순한 수목을 넘어선 존재였다. 주민들은 최소 100년 전부터 나무 아래서 보름마다 동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해 왔다. 나무 아래에는 작은 제각(祭閣)과 제사 흔적이 남아 있으며, 주민들은 “나쁜 일이 생길까 가지 하나도 함부로 자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2000년에는 북구 노거수로 지정돼 공식 보호관리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나무의 제거 여부를 두고 주민들의 고민도 크다. 김도현 통장은 “주민들에게 상징적 의미가 큰 나무라 뽑아도 걱정, 안 뽑아도 걱정인 상황”이라며 “살리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마을 주민 최성근씨도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나무가 순식간에 말라버렸다. 제사를 지내던 자리의 중심이었던 만큼 착잡한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북구는 내년께 정식 고사 판정이 내려질 경우 원칙상 제거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오랜 기간 마을 의례 공간이었던 점을 고려해, 향후 활엽수 중심의 대체목 식재 방안을 주민들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북구 관계자는 “현재 상태는 고사 과정에 있다고 본다”며 “기존 공간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성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김은정기자 k2129173@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