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부평 2공장과 오래된 미래

2025-12-03     경상일보

‘간다/ 2공장이여 안녕/ 그렇게 늙은 노동자는/ 또 팔려간다/ 새로운 먹거리를 쫓아/ 슬프구나!’

내가 나고 자란 고향 인천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완성차 공장이 있다. 1962년 새나라자동차공업이 설립한 이 공장은, 이후 신진자동차공업(1965년)-새한자동차(1976년)-대우자동차(1983년)-GM대우(2002년)-한국GM(2011년)으로 무수히 주인이 바뀌었고, 2022년 11월 26일을 끝으로 가동이 중단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차체 2공장, 도장 2공장, 조립 2공장을 통칭해 부평 2공장이라 부르는 이곳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부평구 문화재단과 경인 콜렉티브, 한국지엠 금속노동조합이 함께 ‘모터 타임즈’라는 전시회를 지난 9~11월 열었다. 이 가운데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작가들의 설명과 함께 멈추어 선 조립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견학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 참여했다.

전시 견학에서 내게 충격을 준 것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를 떠올리게 하는 육중하면서 동시에 촘촘히 채워져 있는 생산시설만이 아니었다. 세부 공정마다 그 일을 맡았을 노동자들이 작성했을 매뉴얼, 작업일지, 택 타임별 주의 사항들이 빼곡히 적힌 보드가 걸려있었는데, 그 흔적이 너무나 생생해서 내일이라도 이 기록을 남긴 사람들이 이곳으로 돌아와 다시 일하기 시작할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지금은 멈추어 선 부평 2공장의 노동자들 일부는 한국GM 군산공장이 2018년을 끝으로 폐쇄되자 전환 배치된 이들이었다. 그리고 4년 뒤, 부평 2공장마저 운행을 중단함에 따라 이들 중 고용이 보장된 일부는 부평 1공장과 창원공장으로 다시 일자리를 옮겼다. 이글의 맨 앞에 옮겨적은 메모는 견학 현장의 작업자들이 사용하였을 책상 한구석에 남겨진 글귀로,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거듭하여 일터를 떠나야 하는 처지를 어떻게 느꼈을지 짐작하게 한다.

견학 초입에서 안내자는 자동차 생산 공정은 무수한 조립의 연쇄라고 설명한다. 널리 알려진 대로 자동차 1대를 구성하는 부품 수는 3만여 개에 달하는데, 이것들이 각각 생산되고 조립되어야 하니 자동차 산업이 기술집약적·노동집약적이고 고용유발효과가 높은 산업으로 이해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 상식이 바뀌고 있다. 전기차의 등장 때문이다. 엔진과 변속기를 모터와 감속기가 대체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자동차 부품들이 사라지게 된다. 그 결과 전기차의 부품 수는 내연기관차 대비 3분의 1로 줄어든다.

2025년 3분기 말 현재, 전기차의 시장 점유율은 글로벌 기준 25%, 국내 기준 13.6%이다. 신차 등록 추이를 볼 때, 이 수치는 앞으로 더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시장 변화 속에서, 부평 2공장이 재가동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현재 한국GM은 부평 2공장의 토지와 시설 매각을 추진 중에 있다.

기술 혁신이 제조 전 공정의 변화를 불러오고, 이것이 해당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되는 일은 여러 분야에서 반복됐다. 인쇄업에서 DTP 시스템이 도입되자 식자공(植字工)들이 일자리를 잃은 것이 그 대표적 예이다.

기술 변화 도입에 적극적인 미국 기업들의 경우, 올해 9월까지 발표된 인력 감축 규모 94만6000명 가운데 인공지능(AI)을 직접 이유로 제시한 기업은 표면적으로는 4%에 불과하나, 효율화를 이유로 한 인력 조정은 계속 확산 중이다. 주목할 부분은 이 기술이 대체하는 대상 인력은 우리가 예상했던 단순 노무직이 아닌, 사무직과 전문직 중심의 화이트칼라 직종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올해 아마존이 해고 예정인 14000명 중 본사 소재 감원 대상 인력의 40%가 개발자 직군이다. 이 회사의 전년 동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 13%, 20% 늘어났다. 고용없는 성장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기업들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AI를 통한 수익성 극대화가 얼마나 많은 노동 인력을 배제(the displacement of people in the workforce)하는 결과를 불러올지 아직 많은 이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현실화하기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이준희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