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란의 도서관 산책(11)]평생교육의 동반자, 울산남부도서관
울산대공원 정문에서 옥동 주택가로 5분 정도 걸으면 울산남부도서관이 모습을 나타낸다. 주말이면 유모차를 끄는 젊은 부부, 친구들과 모인 학생들, 그리고 배움의 열정이 가득한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세대가 이곳으로 모인다.
울산 남구는 대공원과 도서관을 중심으로 교육·문화 인프라가 밀집된 지역이다. 주민들의 높은 학습 열기를 증명하듯, 남부도서관은 지난 35년간 단순한 책 저장 공간이 아니라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평생교육의 거점 역할을 해 왔다. 1989년 3월 ‘울산시립남부도서관’으로 처음 문을 연 이곳은 현재 연면적 4479㎡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다. 건물에는 영유아자료실, 어린이자료실, 종합자료실, 디지털자료실, 연속간행물실, 시청각실 등이 갖추어져 있다. 도서 29만여 권, 비도서 자료 1만5000여점, 정기간행물 260여종, 좌석 950여 개를 갖춘 대표적인 생활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도서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남부도서관의 서비스는 0세 아기부터 80세 이상 어르신까지, 생애 단계에 따라 촘촘하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생동감은 먼저 영유아 서비스에서 엿볼 수 있다. 남부도서관은 2005년 전국 공공도서관 최초로 “책과 함께 인생을 시작하자”는 ‘북스타트(Bookstart)’운동을 시작했다. 북스타트는 독서가 공부가 아닌, 양육자와의 따뜻한 교감으로 이어진다. 도서관은 남구에 거주하는 0개월부터 취학 전 영유아에게 그림책 2권과 가이드북이 담긴 꾸러미를 선물한다. 아이들이 책과 친해지도록‘책놀이’수업을 하는 것은 물론이다. 가족 단위 이용자를 위해 인형극을 열기도 하며, 어린이집이나 다문화가족지원센터로는 사서가 직접 찾아가 북 꾸러미를 배부하고 독서 후 프로그램까지 진행한다.
최근에는 이 서비스가 ‘우리 아이 천 권의 그림책 읽기’ 사업으로 확장되었다. 취학 전 5~7세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3년간 1000권 읽기 프로젝트는 거주지와 상관없이 도서관 회원이라면 누구나 5권이 든 책 꾸러미를 대출할 수 있다. 책들을 다 읽으면 인증서와 메달을 받게 된다. 도서관은 부모를 대상으로 책 활용법과 책놀이 프로그램도 제공하며, 호응이 높아 내년에는 이 사업을 초등학생까지 넓힌 ‘우리 아이, 천천희(喜) 읽기’ 사업으로 확대 운영할 계획이다.
남부도서관은 청소년의 성장을 돕는 학교 교육 지원에도 적극적이다. 학교도서관과 협력하여 진행하는 초등교육과정과 연계한 독서프로그램은 인기가 높다. 중·고교생에게는 진로 체험을 진행하여 사서라는 직업을 소개하고 올바른 독서법을 가르친다. 무엇보다 청소년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높이기 위해 작가를 학교로 초청해 강연을 열거나 음악이 있는 북 콘서트를 개최하여 감수성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한다. 교사 지원 역시 꾸준하다. 유치원과 초·중등·특수학교 교원을 대상으로 독서치료 연수 등을 운영하여,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하고 지도할 역량을 강화하도록 돕는다.
도서관에 오기 어려운 지식정보 취약계층을 위한 배려 또한 남부도서관의 큰 특징이다. 전국 공공도서관에서 장애인 등에게 제공하는 국가 무료 도서 택배 서비스인 ‘책나래’의 대상보다 범위를 넓혔다. 지역 복지 서비스의 일환으로 장애인뿐만 아니라 65세 이상 어르신, 임산부, 24개월 이하 영유아 보호자, 그리고 다문화·저소득·북한 이탈 가정까지 모두에게 제공한다.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책을 신청하면 집 앞까지 무료로 배달되며 반납도 집에서 편하게 할 수 있다. 이 서비스는 취약계층의 독서권을 보장하고 지식정보 격차를 해소하는데 기여한다.
한편,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르신들을 위한 초등 학력 인정 문해교육인 ‘글샘행복학교’를 운영한다. 초등학교 전 과정을 3년에 걸쳐 이수하고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는다. 2014년부터 꾸준히 운영하고 있으며 졸업자들에게 도서관은 새로운 인생을 여는 열쇠와 같다. 수료식 날, 한 어르신은 “평생 버스 노선표를 읽지 못해 늘 물었는데, 이제는 내 눈으로 보고 다닌다. 은행에 가서 내 이름 석 자를 쓸 때 가슴이 벅차올랐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처럼 남부도서관은 누군가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눈을 열어주는 ‘학교 밖 학교’ 역할을 묵묵히 수행한다.
책을 빌리거나 공부만 하는 조용한 도서관은 이제 옛말이다. 남부도서관은 지역 주민들이 문화를 즐기고 직접 창작 활동을 하는 ‘문화 놀이터’이기도 하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은 ‘문화수북(水Book)데이’로 바뀐다. 이날은 대출 권수가 두 배로 늘어나고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린다. 1층 로비 갤러리에는 지역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도서관을 찾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울산남부도서관의 35년 역사를 보면, 갓 태어난 아기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생애와 도시의 성장을 묵묵히 뒷받침해 온 거목(巨木)이다. 도서관 문이 닫힌 밤에도 서비스는 멈추지 않는다. 울산대공원 입구와 도서관 외부에 설치된 ‘스마트도서관’은 365일 24시간 책을 대출하며 지혜와 위로를 건넨다. 책 냄새와 사람 냄새가 어우러지는 남부도서관, 이곳이야말로 우리 곁의 든든한 평생의 벗이다.
이애란 칼럼니스트·문헌정보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