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수의사가 제안하는 반려동물의 마지막 동행-펫웰다잉
수의사로서 반려동물의 생애를 함께하는 일은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여정이다. 새 생명의 첫 심장 소리를 듣는 일에서부터, 그 생명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는 일까지, 수의사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경험한다. 반려동물의 죽음 앞에서 보호자와 함께 눈물을 흘리는 일이 결코 드물지 않다. 하지만 오랜 임상 현장을 돌아보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반려동물의 죽음을 ‘두려움’과 ‘상실’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 결과, 반려견을 떠나보낸 보호자는 깊은 펫로스(pet loss)에 빠지고, 때로는 죄책감과 우울로 일상생활이 무너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제는 반려동물의 마지막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때다. 필자는 ‘펫웰다잉(Pet Well-Dying)’이라는 개념을 제안하고 싶다. 펫웰다잉은 단순히 반려동물의 임종을 맞이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존중하고 평화로운 죽음을 준비하는 반려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이는 ‘어떻게 살 것인가’ 못지않게 ‘어떻게 떠나보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이다. 인간이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웰다잉(Well-Dying)’을 논하듯, 반려동물 또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하게 대우받아야 한다.
펫웰다잉의 핵심은 “의학적 완화와 정서적 동행”에 있다. 수의학적으로는 통증 관리, 영양 보조, 불안 완화 등 삶의 질을 유지하는 완화의료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보호자의 감정적 준비와 마음의 치유가 병행되어야 진정한 웰다잉이 완성된다. 수의사는 반려동물의 상태를 설명하는 전문가이자, 보호자가 슬픔을 건강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동행자여야 한다. 반려동물의 마지막을 의학적 사건으로만 보지 않고, 보호자와의 관계 속에서 ‘함께의 의미’를 되새기는 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많은 보호자들은 반려동물의 임종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갑작스러운 병의 악화, 고통스러운 선택의 순간 앞에서 당황하고, “내가 뭘 더 해줄 수 있었을까” 하는 후회에 빠지곤 한다. 펫웰다잉은 그런 불안과 후회를 줄이기 위한 준비 과정이기도 하다. 수의사가 미리 반려동물의 말년 관리와 임종 케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보호자가 함께 마지막을 계획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반려동물은 평온하게 눈을 감고 보호자는 감사의 마음으로 그 시간을 맞이할 수 있다. 죽음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 과정을 ‘고통’이 아닌 ‘사랑의 완성’으로 바꿀 수는 있다.
우리 사회는 이제 반려동물을 단순한 ‘반려생명’이 아닌 ‘존중받아야 할 가족’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그 죽음 역시 가족의 죽음처럼 존중돼야 한다. 펫웰다잉은 단지 감성적 위로가 아니라, 생명윤리의 연장선에 있는 개념이다. 반려동물이 마지막까지 인간에게 의존해야 하는 존재임을 고려할 때, 그들의 웰다잉은 보호자의 책임이자 권리이며, 수의사가 함께 짊어져야 할 전문적 사명이다.
펫로스는 슬픔의 언어지만, 펫웰다잉은 사랑의 언어다. 반려동물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그 시간이 남긴 따뜻한 기억을 마음에 새기는 과정은 보호자에게도 심리적 회복의 길이 된다. 반려동물의 생애는 짧지만, 그 사랑의 기억은 길게 남는다. 펫웰다잉은 바로 그 기억을 ‘아픔’에서 ‘감사’로 바꾸는 과정이다.
앞으로 수의사 사회는 단순한 치료의 영역을 넘어, 반려동물의 생애 주기 전반을 아우르는 ‘생애 돌봄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수의대 교육과정에도 반려동물 호스피스, 펫로스 상담, 웰다잉 커뮤니케이션이 포함될 필요가 있다. 반려동물문화센터나 공공기관은 이러한 변화에 맞춰 ‘펫웰다잉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시민들이 반려동물의 생애를 존중하는 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별은 늘 아프지만, 그 아픔 속에서도 사랑을 배우는 길이 있다. 반려동물의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평화로, 상실이 아닌 완성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우리가 반려인으로서, 그리고 수의사로서 도달해야 할 성숙한 자세다. 펫로스를 넘어 펫웰다잉으로, 이제 반려동물의 죽음에도 존엄이 숨 쉬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성기창 울산반려동물문화센터 애니언파크 센터장·수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