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6장 / 불패의 달령 전투(91)
“아닙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저는 기쁜 마음으로 옥화낭자와 혼인을 하겠습니다. 허락해 주시지요?”
“이미 정절을 잃어 흠이 생긴 딸아이인데 제가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게다가 내 딸의 목숨까지 살려준 은인이라면 더 생각해서 무얼 하겠습니까? 게다가 양반 댁 정실부인이라니? 허락을 구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저희 부부입니다. 흠이 많은 아이지만 제 딸아이를 거두어 주십시오.”
“그럼 허락하신 걸로 하고 이 순간부터 저를 양 서방이라고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리.”
“아버님, 어머님, 그 나리라는 말은 빼고 그냥 양 서방이라고 부르시라니까요.”
“그럼 사람 없는 곳에서만이라도 그냥 양 서방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양 서방?”
“네, 아버님!”
“하하하하.”
장인과 사위가 되기로 한 천동은 오랜만에 큰 소리로 웃었다. 아버지가 천동에게 양 서방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옥화는 기뻐서 어찌할 줄 몰랐다. 왜인들에게 붙들려가서 능욕을 당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지옥이었는데, 불과 반나절도 안 돼서 이렇게 기쁜 일이 생긴 것이 꿈만 같았다.
“나도 우리 양 서방을 환영합니다.”
옥화의 어머니도 활짝 웃어보였다.
“아버님, 어머님, 고맙습니다. 부모님도 다 돌아가시고 의지할 곳조차 없는 몸이라서 두 분을 친부모님처럼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저는 갑자기 허울 좋은 양반이 되었지만 태생이 천한 놈이라서 굳이 양반들이 만들어 놓은 예의범절에 얽매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자식 하나 더 생겼다고 생각하시고 저를 사위가 아닌 자식으로 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야 양 서방의 그런 마음만으로도 고맙지. 자네 말대로 조선의 법도를 떠나서 그냥 부모와 자식처럼 그렇게 지내보세나.”
그날 천동은 그 집에서 저녁까지 먹고 집으로 갔다. 비록 씨암탉은 없었지만 그분들의 진심어린 마음이 전해져서 더없이 푸짐하고 넉넉한 대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좋아진 그의 발걸음은 경쾌하고 가벼웠다.
집으로 가는 길은 아직 초저녁이라서 어둡지 않았고, 마음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지당마을은 김 초시가 살고 있어서 이번에는 산길을 택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천동의 눈에 이상한 광경이 목격되었다.
웬 할머니 한 분이 조그만 봉분의 무덤 앞에 앉아 있었다. 무덤은 만들어진 지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았다. 혹시 여우가 아닐까 잠시 생각했지만 호랑이라도 두려울 게 없는 그이기에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저녁노을에 반짝이는 노파의 은빛 머리칼이 섬뜩한 느낌으로 다가왔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잠시 후에 천동은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