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열심히 일한 벌, 동안거(冬安居)에 들어가다
지난주, 워싱턴에 사는 셋째 동생의 아들이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조카 중에서는 처음으로 결혼 테이프를 끊고 여행을 떠났다. 다 알다시피 신혼여행은 ‘허니문(honeymoon)’이라 하는데 한자어로는 ‘꿀처럼 달콤한 달’이라는 의미로 ‘밀월(蜜月)’이다.
여기 나오는 ‘蜜(꿀, honey)’은 벌이 꽃을 매개로 하여 만들어 내는 천연식품이다. 다시 말하면 꽃에서 분비하는 꽃꿀(Nectar)을 수집한 일벌이 당을 분해하여 토해낸 점성이 있는 감미료이다.
1㎏의 꿀을 만들기 위해 560만 송이의 꽃을 찾아다닌다는 벌은 충매화를 수정하여 열매를 맺게 하고 발에는 꽃가루를, 입에는 넥타를 머금고 벌집으로 돌아온다. 벌이 화밀(花蜜)을 운반하여 집 벌에 인계하면 집안의 일벌은 효소를 이용해 과당과 포도당으로 분해하여 1차적인 꿀을 만든다. 여기에 날개바람을 일으켜 80%의 수분을 증발시키고 18% 정도로 농축된 꿀이 완성되면 밀랍(蜜蠟)으로 벌집을 밀봉(密封)한다.
벌통 하나에는 여왕벌 한 마리, 일벌 수만 마리와 약간의 수벌이 산다. 꿀을 만드는 것은 암벌인 일벌이고 수벌은 오직 여왕벌과 교미를 위해 존재한다. 한창 일할 때의 일벌 수명은 6주 정도인데 평생 로열젤리를 먹는 여왕벌은 최대 5년을 살며 알은 하루 2000여개, 평생 120만개 이상을 낳는다. 로열젤리는 성충이 되어 나온 5~15일령의 어린 일벌이 화분과 꿀을 먹고 만드는 물질인데 고대에는 불로장생의 명약으로도 알려졌다.
꿀은 벌이 방문하는 꽃에 따라 아까시꿀, 밤꿀, 유채꿀, 관절과 기관지에 좋은 때죽나무꿀, 싸리꿀 등 다양하지만 그 많은 벚꽃은 생산량이 미미하다. 특히 아까시나무는 연간 꿀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밀원수(蜜源樹)로서, 5월이 되면 양봉인들은 이 꽃의 개화 루트를 따라 수백 개의 벌통을 차에 싣고 이동 양봉을 하는 경우도 있다.
매년 5월20일이 ‘세계 벌의 날’ 이다.
슬로베니아는 유럽에서 가장 큰 양봉 국가로, 200명당 한 명이 양봉업에 종사한다고 한다. 꿀벌의 생태계가 급격하게 파괴되는 현실을 인식하여 현대 양봉의 선구자이기도 한 이 나라 안톤 얀사(1734~1773)의 탄생일에 맞춰 2017년에 UN이 제정했다.
꿀벌은 기후와 주위 환경 변화에 매우 민감하여, 서식 지역 생태계의 안정성을 상징하는 환경 지표종이다. 기후 변화와 함께 생태계 파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각종 공해물질의 확산, 농약의 과다 사용, 응애의 영향 등으로 꿀벌의 집단폐사가 진행되었다. 벌의 급격한 개체 수 감소는 식량안보에 위협을 가하고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의 식탁과 지구를 지키는 벌의 존폐를 걱정하는 것은 인류의 미래와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벼나 밀 등 풍매화를 제외하고 벌레로 꽃가루받이하는 충매화 중 75%는 꿀벌에 의한 꽃가루받이를 하고 열매를 맺는다.
꿀팁, 꿀조합, 꿀직장 등 인간이 ‘꿀 같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벌의 생태계에 더욱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오는 22일은 연중 밤이 가장 긴 ‘동지(冬至)’이다.
벌들은 꽃이 피지 않는 겨울 동안 활동량을 줄이고 서로 밀착하여 온도를 유지하며 긴긴 동안거(冬安居)에 들어간다. 올겨울, 그간 열심히 일한 벌이 겨우내 편안히 힐링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윙윙대며 왕성한 세력을 자랑하는 봄을 기대해 본다.
권영해 시인·울산예총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