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小공원 산책하기](23)순수한 손길-구루미공원
다르게 들리는 말 구루미가 구룸이로
사투리 같기도 한 그 말님 되뇌인다
잡초를 뽑던 할머니 공원 자랑 끝없다
삼각형 모양 닮은 공원의 안내도가
모서리 잘린 채로 꿋꿋이 서 있다
공원을 대하는 마음 뾰족해선 안 된다
거의 다 외국 수종 공원도 글로벌시대
수목이 울창한 건 토양 힘 덕분이지
때때로 주민들 관심도 한몫해야 하겠지
공원에 들어서면 나무부터 살피게 된다. 이번에도 큰 나무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나무를 볼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비 오던 하늘에서 구름이 걷힌 것처럼 나무들이 더 화창하고 산뜻하게 보여 시선이 오래 머문다.
나무를 한참 올려다보며 걸음을 옮기던 중 맨손으로 화단의 풀을 뽑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복장을 보니 공원을 관리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인사를 먼저 건넨 후 풀을 뽑는 이유를 살짝 여쭸다. 모자를 쓰고 있던 할머니는 잘 물었다는 듯, 웃으면서 “저 앞에 사는 주민인데 얼마 전에 맥문동을 구청에서 심었는데 풀들이 보여 뽑는다.”라고 했다. 연세를 물었더니 80대라고 하신다.
그동안 공원을 다녀도 마을 주민이 직접 풀을 뽑는 일은 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할머니의 선한 마음이 귀하게 읽히어 “할머니 공원에 대한 애착이 참 많으신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할머니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마을에 잘 가꾼 공원 하나 있어 주변이 많이 밝아졌다, 공원이 새로 정비돼 정말 기쁘다.” 할머니의 말씀 속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정말 좋다는 마음이 목소리에서도 묻어났다. 나는 할머니께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항상 건강하시라.”라고 했다. 할머니는 자신이 사는 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좋아하셨다.
공원의 담은 나무울타리였다. 미국개나리들이 높이를 거의 비슷하게 한 채 좋은 울타리가 돼주고 있었다. 낯익은 나무들도 많이 보였다. 히말라야시다, 중국단풍나무 그러고 보니 나무들이 외국 수종이다. 뿌리를 잘 내리고 공원을 빛내주는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 말씀처럼 맥문동은 갓 심은 것처럼 흙을 북돋운 게 보였다.
처음 보는 식물도 많았다. 수수꽃다리 꽃무릇 나무수국 쥐똥나무 은목서 말발도리 등이 공원의 한 식구로 살고 있었다. 여러 나무 중에서 유독 중국단풍나무 줄기에 눈길이 갔다. 속살이 친근한 황토색이다. 그동안 저런 색깔을 본 적이 없어 처음에는 나무에 상처가 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닌 수피색이었다. 다행이었다.
현대적으로 꾸며진 공원이 주민들에게 훌륭한 쉼터가 되고 있었다. 동서남북으로 주택이 둘러싸여 있다. 공원으로 들어오는 길은 모두 세 군데이고 사잇길 하나가 더 있다. 잘 정돈된 공원에 흰 와이셔츠를 입은 중년의 남성이 들어오니 공원이 더 밝게 빛나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흙 밟는 일은 어려웠지만 그렇게 불만이 생기지 않았다. 공원은 구청의 노력만으로 잘 가꾸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 80대 할머니처럼 관심과 애정을 기울일 때 어느 공원보다 돋보이는 곳이 될 것이다. 공원을 자기 집처럼 생각하고 풀 하나라도 뽑는다면 공원의 이미지는 더욱 격상될 것이다.
외국 수종이 우리나라 기후와 토양에 잘 적응하고 튼튼하게 뿌리를 내린 것처럼 이 공원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주민들의 마음도 잘 뿌리내렸으면 한다. 80대 할머니 같은 아름다운 손길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추측이 된다. 마음이 포근해지는 곳이다.
글·사진=박서정 수필가·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