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겨울 텃밭에서 아이들의 봄을 보았다
교육에는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라는 개념이 있다. 특정한 심리적 특성이 학습되는 최적의 시기가 존재하며 그 시기를 놓치면 이후에는 그 능력을 제대로 습득하기 어렵다는 이론이다. 물론 인간의 학습 가능성이 평생 열려 있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나는 여전히 학생들에게도 분명히 ‘때’가 있다고 믿는다. 어떤 지식과 기능, 혹은 태도와 책임감이 스며드는 데에는 그 나이에만 허락되는 감수성과 열림이 있다. 그래서 교사는 그 시기를 잘 발견하고 학생들이 그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학교에 있는 작은 텃밭을 볼 때마다 늘 이 생각이 떠오른다. 봄에 심은 채소들은 햇볕과 기온 덕을 보며 빠르게 자란다. 물을 주고 잡초만 조금 뽑아줘도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 주어 성취감을 느끼기에 제격이다. 노력한 만큼 보상이 즉각적으로 돌아오는 계절이다. 그러나 늦가을이 지나 겨울 초입에 심은 채소들은 다르다. 성장 속도는 현저히 느리고, 조금만 방심해도 잎이 상하거나 얼어 죽는다. 더 세심하게 돌봐야 하고 조건이 좋지 않기 때문에 성장의 속도 역시 더디다. 이런 텃밭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의 성장도 계절의 조건에 따라 이렇게나 다른데 하물며 복잡한 감정을 품고 살아가는 학생들의 성장은 얼마나 더 섬세한 조건을 필요로 할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이어진다.
그러던 중 12월2일자 신문에서 학생자치활동이 교육정책을 주도하고 학교 운영 혁신의 결실을 맺고 있다는 소식을 읽었다. 텃밭을 보며 떠올렸던 ‘결정적 시기’라는 단어가 다시 떠올랐다. 학생들이 학교 운영의 전면에 나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 기획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성장의 시간이다. 흙 속 작은 새싹이 빛을 향해 밀고 올라오듯 학생들도 자신에게 주어진 시기와 환경을 통해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필자는 학생자치가 단순히 교육적 결실이라기보다, 학생들이 자신의 결정적 시기를 충실히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느낀다. 기회를 부여받고 시행착오를 경험하며 무엇보다도 일방적으로 정해진 결과를 수동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수업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자율성과 권리의식, 공동체 의식을 자연스레 익히게 된다. 본교에서도 학생자치회가 축제 기획과 규정 개정에 참여하고, 오픈채팅방을 만들어 학생들의 어려움을 수렴하며 해결책을 찾아가는 모습이 자리 잡았다. 이 모든 움직임은 학생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때’를 주도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수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학생들의 가능성은 우리의 예측을 훨씬 넘어선다. 성취수준이 낮다고 생각한 모둠 안에서 자연스럽게 리더 역할을 맡는 학생이 있었다. 그리고 발표를 정리하고 친구들의 의견을 모으며 조율까지 맡았다. 교사가 보기에는 부족해 보였던 학생들이 모둠 안에서는 각자의 역할을 찾아가며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학생의 성장은 우리가 세운 기준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어른들의 섣부른 판단이 얼마나 학생들의 가능성을 가로막았는지를.
학생들을 믿으면 그 믿음만큼 학생들은 자란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다. 교사는 그저 곁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온도와 물을 맞춰주는 사람일 뿐이다.
필자는 가끔 교육을 ‘농사’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말을 떠올린다. 농사는 기다림과 관찰, 그리고 그 생명에 맞는 환경을 제공하는 일이다. 교육도 다르지 않다. 학생이 어느 시기에 무엇을 흡수할 수 있는지, 언제 가장 빛날 수 있는지, 언제 넘어지기 쉬운지 알아차리는 것. 그 결정적 순간에 손을 내밀어 주는 것. 그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학생들의 자치활동과 수업 속 자발적 움직임, 그리고 느리지만 꾸준한 성장은 모두 그들이 자기 시기를 살아가는 모습이다. 교사는 그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곁에서 도와주는 사람일 뿐이다. 그렇게 매일 학생들의 또 다른 성장을 마주한다. 겨울 텃밭에도 봄을 준비하는 생명이 있듯 학생들 역시 각자의 속도로 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나는 그 곁에서 조용히 그들의 계절을 응원한다.
안상길 대송고등학교 교사
※외부원고는 본보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