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7장 / 정유재란과 이중첩자 요시라 (98)

2025-12-18     차형석 기자

하나코는 세평을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다시 눈물을 흘렸다.

“아저씨께 목숨을 구명 받은 은혜도 못 갚았는데 어떻게 제가 그걸 넙죽 받아요? 저는 그렇게 못합니다.”

“하나코, 나는 어차피 후사도 없이 그냥 죽어야 할 운명이다. 너라도 행복하게 사는 걸 보면 내 죽음이 덜 허무할 것 같아서 그러는 것이니, 거절하지 말고 주는 대로 받아라. 내일 바로 조선으로 떠나야 하니 이만 자자.”

하나코는 그날 자신의 방으로 가지 않고 세평의 품에 안겨서 단잠을 잤다. 그리고 이튿날 둘은 조선인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대마도를 떠났다.

1597년 1월8일(음력), 요시라 일행은 새로 경상도 감영이 설치된 대구의 한 기방에 나타났다. 그는 주인에게 한 달분의 비용을 선불로 지급하고 별채를 통째로 빌렸다. 그런 다음 시장에 가서 각종 포목과 장신구들을 구입하여 치장했다. 준비가 끝나자 요시라는 미리 연통을 넣은 경상우병사 김응서를 유곽으로 청했다. 요시라와 김응서는 이미 구면이다.

“대감, 존안을 다시 뵈오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그간 평안하시었습니까?”

요시라는 김응서에게 조선식의 큰절을 올렸다. 우병사는 흡족한 얼굴로 새삼스럽게 웬 예의냐며 짐짓 말리는 시늉을 했다.

“우리 사이에 절은 무슨, 게 앉게.”

“네, 대감마님.”

요시라는 대기하고 있던 시종을 불렀다.

“준비한 거 가지고 오너라.”

“네.”

잠시 후에 요시라는 시종이 가져온 금보에 싼 보석함을 대감에게 올렸다.

“이게 무언가?”

“약소합니다. 풀어보시옵소서.”

김응서는 보자기를 푼 후에 보석함을 확인하고는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뭐 이렇게까지. 내게 부탁할 거라도 있는가?”

“대감, 부탁이 있기는 있습니다. 저희 항왜들은 조선에서의 입지가 좁아서 항상 불안합니다. 저는 이 나라가 좋아서 태어난 조국을 버리고 조선을 선택했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서 늘 불안합니다. 부디 대감께서 현 조정의 실세인 당상관들에게 잘 말씀드려서 이곳에서 천수를 누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목숨이 붙어 있어야 재산도 필요한 거지, 앞날이 불투명한 저희 같은 항왜들에게 이런 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대감, 부디 거두어 주십시오.”

“그 심정 내가 모르는 바 아니지. 그동안 조정에서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항복한 왜인의 대부분을 그냥 참해 버렸지. 너무 많으면 통제하기도 힘들고 아직 전란 중이라서 온전히 믿기도 어렵고 그래서 그랬네. 그러다 보니 조선으로 넘어온 항왜들이 많이 불안해하는 것 같은데 걱정하지 말게. 자네는 내가 책임지고 보호해 줄 거니까.”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