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형제복지원 이전에 영화숙·재생원이 있었다
지난 11월, 대법원은 형제복지원 국가배상 사건에서 ‘정책의 연속성’ 법리를 확립하며 1975년 훈령 이전의 피해까지 국가 책임을 인정했다. 부랑인 단속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온 국가폭력의 구조 자체에 책임을 물은 판단이었다. 그 판결로부터 불과 2주 뒤, 부산지방법원 법정에는 형제복지원보다 10여 년 앞서 같은 폭력을 겪은 사람들이 섰다. 영화숙·재생원 피해자들이다.
1971년, 9살 한 아이는 부산 시민극장 앞에서 신문을 팔다 강제수용되었다. 육성회비를 마련하려 신문을 팔던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좋은 일자리가 있다”는 말에 속아 연락사무소로 끌려갔고, “너희는 이제 다 죽었다”는 말과 함께 군용트럭에 실려 재생원으로 향했다. 집 주소와 학교 선생님 이름을 대며 애원했지만 돌아온 건 폭행뿐이었다. 두 달 만에 탈출했지만, 1973년 부산진역에서 다시 붙잡혔다. 낯선 남성이 건넨 음료수를 마신 뒤 정신을 잃었고, 깨어났을 때 그는 다시 재생원에 있었다. 그곳에서 10개월간 수용되며 성폭행을 당했고, 저항하다 각목에 맞아 팔뼈가 부러졌다. 치료는 없었다. 지금도 팔은 완전히 펴지지 않는다.
영화숙·재생원은 1960년대부터 1976년까지 부산 사하구 장림동에서 운영된 부랑인 집단수용시설이다. 형제복지원이 1975년 공식 지정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던 이 시설은 군대식 소대 관리, 원생 완장 시스템, 강제노역, 시신 암매장까지 형제복지원과 완전히 동일한 인권유린 구조를 먼저 확립했다. 형제복지원 생존자 중 일부는 영화숙 출신으로, 그곳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형제복지원 소대장이 되기도 했다.
시설 내 폭력은 일상이었다. 구타와 성폭행, 강제노역이 반복되었고, 식사는 하루 두 끼의 꽁보리밥이나 멀건 강냉이죽이 전부였다. 겨울에도 난방은 없었고, 교육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영양실조와 질병, 폭행으로 숨진 원생들의 시신은 야산이나 늪지대에 몰래 묻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암매장된 원생이 최소 24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부산시는 1968년 조례를 제정해 이 시설을 공식 지원했고, 국고보조금도 지급했다. 1976년 원장의 보조금 횡령이 드러나 법인 인가가 취소되었지만, 부산시는 재정 비리만 문제 삼았을 뿐 시설 내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어떤 조사도 하지 않았다. 인권침해는 외면한 채 재산 착복만 처벌한 것은, 국가의 의도적 침묵이자 과거사 은폐였다.
현재 피해자와 유족 185명이 국가와 부산시를 상대로 국가배상소송을 진행 중이며, 필자는 이 소송의 대리인단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달 열린 2차 변론기일에서 네 명의 피해자가 50여 년 만에 증언대에 섰다. 한 피해자의 별명은 ‘변소’였다. 친동생이 변소에 빠져 숨진 뒤 붙은 이름이었다. 어린 시절 성폭행을 겪은 피해자는 증언 도중 결국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법정은 피해자들로 가득했고, 증언 하나하나에 분노와 공감이 교차했다.
피고인인 부산시와 대한민국은 반대신문을 하지 않았다. 이미 진실화해위원회 결정으로 사실관계는 충분히 확인되었고, 이는 뒤늦게나마 피해자들의 고통을 인정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과거사 국가배상소송은 종종 “왜 이제 와서”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러나 영화숙·재생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불과 2022년이다. 한 피해자가 선감학원 보도를 보고 “국가폭력 시설은 그곳만이 아니었다”고 제보하면서부터였다. 침묵은 선택이 아니라 강요였고, 지금의 소송은 늦은 보상이 아니라 비로소 가능한 사법적 대응이다.
영화숙·재생원 사건은 형제복지원 사건의 전사(前史)이자, 국가폭력의 원형이다. 이 사건에서 법원이 형제복지원 판례를 일관되게 적용한다면, 그것은 개별 사건의 승패를 넘어 과거사 국가배상소송의 새로운 기준을 세우는 일이 될 것이다. 오는 24일 1심 마지막 변론을 앞두고 있으며,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2026년 2월 첫 국가배상 판결이 선고될 전망이다.
과거사 국가배상소송은 과거를 처벌하기 위한 절차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다시는 같은 폭력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법의 언어로 과거를 정리하는 과정이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부랑인 정책의 폭력적 집행, 그 원형이 영화숙·재생원이었다면 국가는 더 이상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이제 사법부의 판단이 과거사 청산의 방향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해야 할 차례다.
이나라 법률사무소 율빛 대표변호사 울산대 법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