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안전’ 앞에서 가장 먼저 접히는 건, 늘 ‘낭만’이다
연말이 되면 도시는 잠시 다른 얼굴을 한다. 반짝이는 전구와 캐럴 소리, 크고 작은 장식들이 일상의 속도를 조금 늦춘다. 꼭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 미소 한 번이면 충분하다.
울산 도심을 달리던 ‘산타버스’도 그런 존재였다. 아이들은 버스에 오르며 눈을 반짝였고, 어른들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봤다. 통학과 통근이라는 반복된 일상 속에 잠깐의 낭만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산타버스는 올해 크리스마스를 온전히 채우지 못했다. 부산에서 가연성 장식물 문제로 산타버스 운행이 중단된 전례가 알려지자 울산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됐다.
울산시는 민원 접수 직후 버스 내부를 점검했고, 전구 등 일부 장식물이 안전에 우려된다는 이유로 철거를 요청했다.
버스회사 측은 핵심적인 분위기 연출 요소 대부분을 떼어내야 한다면 산타버스의 의미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전면 철거를 결정했다. 그렇게 산타버스는 다시 평범한 마을버스로 돌아갔다.
물론 안전은 타협할 수 없는 가치다. 대중교통에서 단 한 번의 사고도 용납될 수 없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특히 재난과 사고에 민감해진 사회 분위기 속에서 행정의 판단이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시민들 사이에서는 “낭만이 사라진 것 같다” “아이들에게 남길 수 있는 추억 하나가 줄었다”는 반응도 이어졌다. 실제로 일부 시민들은 일부러 산타버스를 기다려 타거나, 아이와 함께 사진을 남기며 짧은 즐거움을 누려왔다.
위험 요소가 있다면 보완하고 기준을 명확히 하는 방식도 가능했을 것이다. 장식물의 재질을 제한하거나, 설치 범위를 조정하는 등 대안 역시 논의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검토와 조율, 대안 모색보다 가장 안전한 결론, 가장 빠른 행정이 선택됐다.
그 결과 남은 것은 허탈감이다. ‘안전 우려’와 ‘민원’이라는 단어 앞에서 시민들의 호응과 현장의 분위기는 논의의 중심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위험을 관리하기보다, 아예 없애는 선택이 더 익숙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올해 울산의 크리스마스에는 산타버스가 없다. 민원이 반복될 경우, 산타버스의 내년도 운행 역시 장담할 수 없다. 짧은 기간 작은 시도였지만 사라진 뒤에야 그 빈자리가 더 또렷해졌다.
다만 이 일이 ‘낭만은 위험하다’는 결론으로만 남지 않기를 바란다. 안전을 지키면서도 일상의 온기를 어떻게 남길 것인지, 그 질문만큼은 도시 안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한다.
주하연 기자 joohy@ksilbo.co.kr
사회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