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본설계’ 배제된 KDDX, 울산 조선업계 고용 붕괴 우려
총사업비 7조8000억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이 지명경쟁입찰로 결정됐다. 기본설계를 맡아온 HD현대중공업에는 사실상 ‘사형선고’에 가까운 결정이다. 공정과 원칙을 내세웠지만, 방산 산업의 연속성과 현장 노동자의 고용 안정성은 철저히 배제됐다. 원칙을 앞세운 결정이 과연 책임 있는 정책 판단인지 의문이 남는다.
22일 방위사업청 KDDX 사업방식 결정으로, 울산 조선업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수의계약이 유력했던 현대중공업은 경쟁 구도로 전환되며 우선권을 잃고 수주 불확실성을 떠안게 됐다.
이번 결정은 군사기밀 유출 사건을 문제 삼아 경쟁입찰을 요구한 한화오션의 주장을 사실상 전면 수용한 결과로, 공동입찰이 아닌 방식으로 한화오션에 더 유리한 조건이 마련됐다. 이에 따라 사업자 선정 자체를 둘러싼 공정성 논란은 피할 수 없게 됐다.
현대중공업은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정책·정무적 리스크까지 감내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내년 12월까지 적용되는 1.2점 보안 감점은 소수점 단위로 당락이 결정되는 방산 입찰 특성상 사실상 배제 조치와 다름없다. 현대중공업은 이미 2023년 말 울산급 배치Ⅲ 5·6번함 건조에서도 0.1422점 차이로 한화오션에 고배를 마신 전례가 있다.
여기에 정치적 변수까지 겹쳤다. 지난 5일 이재명 대통령의 “군사기밀을 빼돌려 처벌받은 곳에 수의계약을 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한마디에 사업자 선정은 사실상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다. 방사청의 이번 결정이 이를 방증한다. 기술적 경쟁력보다는 정치적 메시지에 따라 결과가 좌우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커진 셈이다.
방사청의 이번 결정은 울산 조선업계와 노동자들에게 직접적 피해를 초래할 심각한 사안이다. HD현대중공업 노조가 지적한 대로, 하청업체를 포함한 약 2100명의 노동자가 일감 공백과 고용 불안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정부와 방위사업청은 노조가 촉구한 형평성과 공정성을 지키는 일감 재편 중단 요구를 외면하고, 사실상 특정 기업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결정을 내렸다.
정부와 방위사업청은 지금이라도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이 우선되는 책임 있는 정책 판단을 내려야 한다. 특히,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에는 기술적 연속성과 노하우를 인정해 가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공정성을 확보하고, 산업 기반과 노동자 보호를 최우선에 둬야 한다. 이렇게 해야 정치적 영향에 흔들리지 않고, 방산 산업의 안정성과 지역 경제, 노동자 고용 안전성을 확실히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