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세 늦깎이 시인이 전하는 그리움의 세월
일제강점기와 6·25 한국전쟁, 보릿고개 등의 한국 근현대사를 겪은 세대로 올해 93세의 망백(望百)의 시인이 첫 번째 시집을 출간했다. 30대 후반의 이른 나이에 남편을 여의고 질곡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남편과 부모님, 고향에 대한 그리움 등을 담은 시집이다.
주인공은 황분선(93·울산 남구 신정동) 시인. 황 시인은 최근 첫 번째 시집 <꿈, 어느 봄날>(세종출판사·110쪽)을 펴냈다. 이 시집은 1~4부로 나뉘어, 1부는 시조 9편이, 2~4부는 자유시 형태로 창작한 시 66편 등 총 75편이 실렸다. 3년 전 등단한 뒤 창작과 원고작업 등 준비를 거쳐 결실을 맺은 것이다.
1932년 경북 포항 출생으로 부모님의 이사로 경주에서 자란 황 시인은 어릴적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 남 부러울 것 없이 자랐다. 그러나 8살때 친구들과 동네 뒷동산에서 ‘밀사리’를 하러 간 뒤 그의 인생이 뒤바뀌었다. ‘밀사리’는 음식이 귀하던 보릿고개 시절, 허기진 배를 달래던 우리의 음식문화로 밀밭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 불에 구워 먹는 것을 말한다. 그는 이 때 불씨가 몸에 붙는 사고를 당했다.
황 시인은 “당시 혼자 비단 옷을 입고 있었는데 옷에 불이 붙어 다 타고 몸에 큰 화상을 입었다. 이 때문에 소학교(현 초등학교)도 결국 다니지 못했고, 늦은 나이에 입학한 중학교도 두 달만 다니다가 중퇴를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황 시인이 겪은 유년시절 이 사건은 시집 제목이자 표제시인 ‘꿈, 어느 봄날’의 모티프가 됐다.
그는 이로 인해 독선생(獨先生, 가정교사)으로부터 글을 배우고, 당시 서당을 했던 아버지 밑에서 한문과 시조창 등을 배웠다. 당시에 배운 시조창이 지금의 시인으로 등단할 수 있게된 밑거름이었다.
이후 6·25 한국전쟁 일년 전 10대 후반의 나이에 결혼을 한 그는 20대 때 경주에서 남편의 직장 이직으로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하지만 남편이 병환으로 30대 후반 나이에 일찍 별세하면서 또 한번의 시련을 맞게 된다. 졸지에 가장이 된 그는 일용직 등을 전전하다 미싱자수를 배워 학원을 운영하면서 두 아들을 키웠다.
두 아들이 장성해 결혼 후 울산의 직장에 자리를 잡으면서 홀로 부산에 남게 된 그는 매일 일기를 썼다. 일기 내용은 일상생활은 물론 고인이 된 남편과 부모님, 또 고향에 대한 그리움 등이며, 이번 시집은 이러한 일기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울산은 2001년에 왔고, 여기에서 그의 시 스승인 한분옥 시인을 만났다.
황 시인이 등단하도록 시 쓰는 법 등을 조언해준 한분옥 시인은 “황분선의 시조는 문학적 수사보다 삶의 비의(悲意)를 정직하게 담은 자서적 노래이며, 우리 민속의 여성적 서정의 맥을 그대로 이어받은 살아 있는 구전시조의 현대적 계승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시인의 말을 통해 “일찍 보낸 당신이 그립고, 보고 싶을 때마다 적어 모은 시를 한 데 묶어 당신 앞에 한 권의 시집을 올립니다. 두 아들 키우며 오로지 당신 생각으로 수십 년을 살아온 세월이었습니다. 앞으로 또 남은 이야기를 쓰고 모아 당신 앞에 보여 드릴 것을 약속합니다”라고 적었다.
차형석기자 stevecha@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