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안전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2025-12-29     경상일보

한 해를 되돌아보면 여전히 많은 산업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고 있다. 사고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우리는 “왜 또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만, 그 답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산업재해는 예측 가능했고,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였다. 위험은 이미 현장에 존재했지만, 그 신호를 읽지 못했거나 애써 외면한 결과가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오늘날 산업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업복과 안전조끼에는 어김없이 ‘안전제일’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 짧은 네 글자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그 유래는 1906년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 최대 철강회사였던 U.S. Steel의 회장 엘버트 헨리 게리는 작업장에서 철판에 깔려 사망한 근로자를 직접 목격한 뒤, 회사의 경영 원칙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생산제일, 품질제이, 안전제삼’이라는 기존 방침을 버리고 ‘안전제일(Safety First)’을 모든 판단의 최우선 가치로 선언한 것이다.

이 결정은 단순한 구호의 변화가 아니었다. 안전을 의사결정의 출발점으로 삼자 산업재해는 눈에 띄게 줄었고, 생산성과 품질 또한 함께 향상됐다고 전해진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는 사실이 이미 100년도 전에 증명된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사고가 발생한 뒤에야 안전을 이야기하고, 책임을 따지는 데서 논의를 멈추곤 한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 현장에는 분명 수많은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점검도 했고 교육도 했으며 주의도 거듭 당부했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사고가 발생하는 순간, 그 모든 과정은 지워지고 ‘1건의 사고’만이 평가의 기준으로 남는다. 아무리 오랫동안 무사고를 이어왔어도 안전은 결코 과거형이 될 수 없다. 안전은 늘 지금 이 순간에도 작동하고 있어야 하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산업안전과 깊이 맞닿아 있다. 영화 속 수학자는 학생에게 정답보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를 묻는다. 설령 답이 조금 틀렸더라도 문제를 풀어가는 사고의 과정이 논리적이라면, 그 풀이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안전에 비유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현장이 정말 안전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작업 전에 어떤 위험을 떠올렸는지, 작업 중 이상 징후를 감지했는지, 위험하다고 느낀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는지가 바로 안전의 ‘풀이 과정’이다. 이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면 무사고라는 결과는 준비된 안전이 아니라 단순히 운이 좋았던 하루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정답만 외우는 공부의 한계도 함께 보여준다. 공식을 암기했지만 응용 문제 앞에서 멈춰 서는 학생처럼, 규정만 외운 작업자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한다. 매뉴얼에 없는 위험, 장비의 미세한 이상, 동료의 불안한 행동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쉽게 지나치게 된다. 생각하지 않는 정답이 문제를 풀지 못하듯, 현장을 이해하지 못한 규정 준수만으로는 사고를 막을 수 없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영화가 ‘오답’을 대하는 태도다. 틀린 답을 꾸짖기보다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를 묻는다. 이는 산업현장의 아차사고, 즉 near miss와 닮아 있다.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묻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런 선택이 나왔을까’ ‘다른 선택은 가능하지 않았을까’를 되짚는 순간, 작은 실수는 큰 사고를 막는 중요한 교재가 된다. 실수를 숨기는 현장에서는 안전도 자라지 못한다.

또한 영화 속 수학은 혼자만의 천재성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질문과 대화,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는 과정 속에서 풀이가 완성된다. 안전 역시 개인의 주의에만 맡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혼자 조심하는 안전에는 분명 한계가 있지만, 작업 전 위험을 공유하고 서로의 행동을 확인하며 이상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 속에서는 사고가 끼어들 틈이 줄어든다. ‘나는 괜찮다’보다 ‘우리는 함께 확인했다’는 말이 더 안전한 이유다.

다가오는 희망찬 2026년 병오년은 말의 해다. 말은 앞으로 나아가되 위험을 감지하면 속도를 늦추거나 방향을 바꾸는 지혜로운 동물이다. 속도만을 좇는 성장이 아니라, 안전이라는 고삐를 단단히 쥐고 모두가 무사히 도착하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야 할 때다. 안전은 언제나,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현재진행형이다.

이정일 한국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 AI 산업안전시스템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