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7장 / 정유재란과 이중첩자 요시라 (103)
천동은 가만히 옥화의 속곳을 벗기고 손으로 더듬어 올라갔다. 옥화의 가래산에 숲이 무성하다. 천동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보름날에 하는 혼례라서 그런지 유난히 달이 밝게 느껴졌다. 황진이의 시가 생각나게 하는 그런 밤이었다.
‘은궐(밝은 달)이 유난히도 아름답던 그 밤의 꽃잠(첫날밤 잠자리)’
혼롓날 초례청에서나 결혼하는 상대의 얼굴을 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이미 알고 있고 생명의 은인이기도 한 사내를 지아비로 맞이한 옥화는 더없이 행복한 날이었다. 꽃무리(불타는 사랑)는 아니지만 마음속에 담았던 사내의 여인이 되는 까닭에 두려움 없이 합궁례(合宮禮)를 치를 수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천동은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쉽게 잠들지 못했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된다는 사실이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장차 태어날 아이들이며, 옥화의 미래까지 자신의 의지와 선택에 따라서 그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늘에 서약을 하며 한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한 이상 이제는 함부로 죽을 수도 없다. 그런 생각을 하니 이 혼례가 잘한 일인지 판단이 안 선다. 그렇지만 이미 선택은 끝난 것이고, 이제 그는 다가올 운명을 그녀와 공유할 수밖에 없다.
이튿날 아침에 일찍 일어난 옥화는 신랑을 깨워서 소세를 하고는 친정 부모님께 아침인사를 드렸다.
“아버님, 어머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그래, 간밤에 좋은 꿈은 꾸었느냐?”
“네.”
“이제 식도 올렸으니 다른 데 갈 생각하지 말고 여기서 지내거라.”
천동은 처부모님의 말씀에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아버님! 어머님! 제가 이제 장가를 들었으니 처가에서 지내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나 농토가 송내마을에 있어서 농사짓기가 많이 불편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척에 있으니 자주 찾아뵙고 문후 여쭙는 걸로 대신하면 어떨까 합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옥화의 어머니가 많이 서운한 마음에 냉큼 한 마디 했다.
“자네 지금 무어라고 하는 것인가? 최소한 3년은 처가에서 살아야지, 그냥 가겠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보는가? 괘씸한 놈 같으니.”
옥화 모가 이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은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의 풍습을 지키지 않으려는 사위에게 화가 나서였다. 막말을 하는 장모도 잘못이지만 혼례 다음 날에 대뜸 집으로 가겠다고 얘기를 한 천동에게도 잘못은 있었다. 천동에게는 그의 행실을 조심시킬 부모가 없기에 자신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다. 하지만 이 말에 상처를 받은 옥화 모는 그녀의 평시 성질머리대로 사위를 대한 것이다. 사태가 험악하게 돌아가자 옥화의 아버지는 당황하며 아내인 옥화모를 나무랐다.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