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손택수 ‘책 바느질하는 여자’
제본소 여자에게 책은 상처다
책 바느질 하느라 입은 상처가 골무를 낀 손가락에 가득하다
바느질 중에 하필이면 책 바느질이라니
여자에게 책은 아물지 않고,
자꾸 덧나는 식으로 묶이는 어떤 생애를 닮았다
본드로 등을 처바른 책보단 한땀 한땀
기워가는 책에 더 마음이 간다는 여자,
실밥 자국은
맹장 수술 자국이 남아 있던 옛 애인의 아랫배 같다
펼쳐보면 페이지 페이지
그 아랫배를 슬슬 문질러주며 부르던 노래가
흘러나올 것도 같은데
전에는 무슨 일을 했느냐 물으면 가만히 실밥을 감추며 책장을 덮는다
세상 모든 책(冊)은 모름지기
이런 실밥 자국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는 듯
상처 안고도 묵묵히 이어가는 삶
‘책(冊)’의 한자는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 대나무 조각을 가죽끈으로 묶은 모습에서 나왔다. 가죽끈을 엮은 모양새가 마치 바늘땀 같기도 하다.
인류가 지식을 보존하기 위해 가장 먼저 했던 행위가 바로 흩어진 것들을 엮어서 ‘묶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끈이든 실이든, 연결하고 꿰매는 행위는 지식을 물리적으로 보존하려는 인류의 원초적인 욕구와 지혜를 담고 있다. 그래서 책을 바느질하는 제본소 여자의 삶은 어쩌면 인류의 궤적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두꺼운 책은 바느질하기 쉽지 않으니 골무를 껴도 상처가 가득하다. 자꾸 덧나는 상처는 여인의 삶이 녹록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한땀 한땀 기워가는 책은 정성과 시간을 들여야 완성된다.
여자는 쉽게 얻어지는 것보다 애써 이룩되는 것에 마음을 기울이고 애정을 보인다.
‘실밥 자국’으로 표현된 고단한 삶의 흔적은 옛 애인의 맹장 수술 자국으로 연결된다.
그래도 아랫배를 문질러 주면 노래가 흘러나온다니, 상처 위에 사랑의 온기가 덧입혀지는 것 같다.
힘든 과거도 따뜻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승화되는 순간이다. 마지막 연에 나오는 ‘실밥 자국’은 여자의 삶과 책을 관통하는 상징이다. 한 인간의 생애와 역사를 의미하는 책(冊).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