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전쟁을 선포했지만, 사망자는 줄지 않았다

2025-12-30     경상일보

2025년은 산업안전 정책사에서 분명한 전환의 해였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과 함께 ‘산재와의 전쟁’을 공식 선언했고, 산업안전 행정은 전례 없는 확장 국면에 들어섰다. 산업안전감독관 2000명 시대를 예고하며 대규모 증원이 추진됐고, 실제로 현재 800명대인 감독관 정원은 신규 채용을 거쳐 향후 2년 내 2100명 수준까지 늘어날 예정이다. 여기에 더해 2026년 상반기에는 경기지방고용노동청과 울산동부지방고용노동청이 신설 예정돼 있다. 정책 의지와 행정 인프라만 놓고 보면, 산업안전 40년 역사에 이만큼 강한 드라이브가 걸린 해는 드물다.

그러나 결과는 아직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5년 3분기 사고성 사망자 통계’에 따르면,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457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오히려 14명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건설업을 중심으로 대형사망사고가 많았다. 부산 기장군 리조트 화재(6명), 세종안성 고속도로 붕괴(4명), 울산화력발전소 붕괴(7명), 광주 도서관 붕괴(4명) 등 대형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이 통계는 일시적 변동이라기보다, 산업현장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는 신호에 가깝다.

물론 고용노동부가 지난 9월 범정부 노동안전대책을 발표하고 안전감독관 증원을 추진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그 효과는 내년 하반기 이후로 예상된다.

2025년 산재사망사고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특별할 게 없다’는 것이다. 사고가 발생한 장소도, 방식도, 원인도 낯설지 않다. 고소 작업에서의 추락, 중장비에 의한 깔림과 끼임, 개구부와 붕괴, 해체·정비 작업 중 사고가 사망의 중심에 서 있다. 위험은 이미 충분히 알려져 있고, 예방 대책 또한 수없이 제시돼 왔다. 그럼에도 같은 사고가 반복된다는 사실은 현장의 문제가 아니라, 위험을 관리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금년도 발생한 대형사고들을 들여다보면 공통된 구조가 더욱 분명해진다. 여러 공정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위험작업에 대한 명확한 승인 절차가 없었고, 작업계획서는 형식적으로 존재했을 뿐 실제 작업을 통제하지 못했다. 관리감독자는 현장에 없거나, 있어도 작업을 멈출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지 못했다. 하청과 재하청으로 이어진 구조 속에서는 책임이 분산됐고, 그 공백 속에서 사고는 우연이 아니라 예견된 결과로 나타났다.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망사고 감소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도 명확하다. 여전히 ‘처벌 중심’에 머물러 있는 정책 기조 역시 한계로 작용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기업과 현장은 사고를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보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책임을 줄일 것인가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위험을 제거하는 기술과 시스템은 뒤로 밀리고, 문서와 방어 논리만 늘어나는 역설이 반복된다. 사망사고가 줄지 않는 이유는 처벌이 약해서가 아니라, 처벌이 예방으로 충분히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발주와 설계 단계에 대한 통제가 여전히 미흡하다는 점이다. 많은 사망사고는 시공 현장에서 발생하지만, 위험은 이미 설계·공기·예산이 결정되는 초기 단계에서 상당 부분 고정된다. 무리한 공기 설정, 원가 중심의 발주, 위험 공정의 외주화 구조를 건드리지 않는 한, 현장에서 아무리 감독을 강화해도 사망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2025년이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산재사망은 단속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라는 사실이다. 정부의 안전규제 강화만으로는 부족하고, 더 강한 처벌을 외치는 것만으로도 한계가 있다. 위험을 설계 단계에서 제거하고, 현장에서 작업을 멈출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을 부여하며, 사고 이후가 아니라 사고 이전에 개입하는 구조로 정책의 무게중심이 이동해야 한다.

산재와의 전쟁은 구호로 이길 수 없다. 숫자의 확장만으로도 이길 수 없다. 2025년이 ‘강한 메시지를 던진 해’로만 남을지, 아니면 산업안전 정책이 방향을 바꾼 출발점으로 기록될지는 이제 2026년의 선택에 달려 있다. 사망사고 통계가 말해주는 불편한 현실을 직시할 때, 비로소 줄어드는 숫자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정안태 울산안전 대표이사 전 한국산업안전공단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