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 울산산업 옥죈다

2025-12-30     서정혜 기자
아이클릭아트

자동차와 석유화학 등 울산 주력산업 기업들이 고환율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미국 관세협상 타결 등으로 통상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정부의 고강도 개입으로 원·달러 환율이 다소 안정세를 되찾았지만, 여전히 1420원대를 넘는 고환율이 ‘뉴노멀’로 자리 잡으면서 잔뜩 움츠러든 모습이다.

울산 울주군 온산산업단지에서 알루미늄 주조 제품을 생산하는 한 자동차 업체는 최근 필수 원자재인 수입산 알루미늄 잉곳(ingot·주괴)이 지난해 연말 대비 10% 오르면서 원자잿값 부담이 커졌다. 당분간은 기존 재고물량을 소진하면서 추이를 지켜볼 예정이지만, 환율이 내릴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일시적인 환율 급등으로 인한 원자잿값 인상은 기존 재고 보유분 등으로 분산시켜 부담을 낮출 수 있지만, 지금처럼 장기간 고환율이 지속되면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회사 관계자는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는 원가 절감도 필요하지만. 품질을 어느 정도 유지하려면, 무작정 저렴한 원자재를 쓸 수만은 없다”며 “해외에서 원자재를 수입하는 경우 달러로 사 와야 해 원자잿값 비중이 껑충 뛸 수밖에 없다”며 토로했다.

자동차 시트를 제작하는 또 다른 업체는 최근 국내외 자동차 판매가 주춤하면서, 매출이 전년대비 15~20%가량 줄었다. 매출은 쪼그라들었지만, 기업 미래를 위한 투자는 소홀히 할 수 없어 연구개발비는 전년대비 2배 이상 늘리고, 선박 부품 등으로 생산품을 다변화하고 있다.

업체 관계자는 “고환율과 관세 영향으로 미국 판매량이 줄면서 매출도 덩달아 쪼그라들었다”며 “매출은 줄었는데, 전동화 등에 대응한 연구 개발비는 오히려 늘어 지출 부담이 크다”고 호소했다.

특히 자동차 업계는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을수록 고정비는 오르는데 공급처 단가 인상은 제한적이여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업체별로 계약에 따라 환율 인상분을 일정 부분 반영해 주긴 하지만, 일부는 어쩔 수 없이 기업이 부담을 안아야 하는 구조다. 또 울산은 완성차와 자동차부품 모두 미국 수출 비중이 높아, 장기적으로 상호관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올해 국내 전체 자동차 수출은 유럽향 수출 증가와 중앙아시아 지역으로의 중고차 판매 증가로 보합을 유지할 전망이지만, 울산은 이 분야 수출이 미미해 반사이익을 노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원유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정유업계와 석유화학업계도 큰 타격을 받긴 마찬가지다. 특히 석유화학업계는 업황 불황에다 원자잿값 인상까지 겹치면서 고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유나 석유화학은 환율이 지속 고점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며 “환율이 소폭 오르더라도 전체 원가 비용은 큰폭으로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인도일 기준 대금 정산을 달러로 받는 조선업계와 비철금속 업계에는 고환율이 호조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환율로 인한 기업들의 부담은 조사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최근 한국경제인협회가 국내 수출 제조기업 111곳을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68.5%가 자금 압박 최대 요인으로 ‘고환율·관세’로 꼽았다. 자금 사정 악화 원인으로는 매출 부진(40.0%), 원자재·제조원가 상승(23.3%), 차입비용 증가(11.1%) 순으로 꼽았다. 기업이 체감하는 글로벌 리스크도 1순위는 환율 상승(43.6%)이었고, 보호무역·관세 인상(24.9%), 미·중 경기 둔화(15.6%) 등이 뒤이었다.

박선민 한국무역협회 울산본부장은 “환율이 높으면 수출기업에는 호재고,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기업은 어렵다는 것이 통념이었지만, 이제는 수출기업도 고환율 기조에서 더 이상 상황이 좋지 않다”며 “근본적으로는 글로벌 업황이 좋아져야 하지만, 특히 석유화학은 포트폴리오 다변화, 자동차는 수출시장 다변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서정혜기자 sjh3783@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