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산재공공병원과 관련된 기이한 상황
최근 지인들로부터 혹시 울산병원이 이전을 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알고 보니 현재 굴화에서 공사 중인 산재공공병원의 공사가림막에 ‘모든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울산병원이 곧 개원합니다’라는 초대형 현수막이 붙어있던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껏 대외적으로 울산 산재공공병원으로 홍보를 해온, 내년 7월 개원예정인 이 병원의 진짜 이름이 사실 근로복지공단 ‘울산병원’이라고 한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남구의 울산병원과 정확히 같은 이름이다.
이후 언론에서도 이와 관련된 문제가 다뤄졌는데 산재병원 측에서는 전국에 있는 산하 병원들의 이름이 지역명+병원으로 통일돼 있고 이번처럼 겹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냥 썼기에 이번에도 그냥 쓰겠다는 입장인 듯하다. 울산병원에서도 며칠 전 근로복지공단 측에 ‘지역사회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으니 명칭에 대해 검토를 바란다’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는데, 이에 “이렇게 공문을 받게 된 것은 ‘근로복지공단 울산병원’이라고 쓰지 않고 ‘울산병원’이라고만 써서 붙인 현수막으로 인해 야기된 문제니 철거하겠다”라는 내용만 담긴 동문서답형 회신을 받았다. 이 이상한 반응과 답변을 보자 공론화의 필요를 느꼈고, 오늘은 이 명칭 혼용이 야기할 수 있는 많은 문제 중 일부만 다뤄보고자 한다.
독자분들께서 자주 이용하시는 병원이 있다면 지금 그 병원의 재단명이 무엇인지 떠올려보시라. 아마 대부분 모르실 것이다. 우리가 보통 병원을 부를 때 병원명으로 구분을 하지 재단명까지 부르진 않기 때문이다. 재단명은 사람으로 치면 부모님 이름 격인데, 우리가 누군가를 인지하거나 대화를 나눌 땐 상대방의 이름을 부를 뿐이지 ‘OOO의 아들 OOO’라고 부르진 않는다. 그런 식의 자기소개는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영화에나 있다. 마찬가지로 재단명(공단명)인 ‘근로복지공단 울산병원’을 전부 표기한다고 해서 기존에 있는 ‘혜명심의료재단 울산병원’과 구분될 거란 말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산재병원 측은 타지역에서 이름이 겹쳐도 그냥 쓴 바가 있다고 했는데 그에 해당되는 곳은 대구병원과 대전병원이다. 이 조치 자체도 정말 잘못이라 보지만 이번 울산 상황이 기존과 또 다른 점 하나는 예상되는 혼란의 규모다. 기존에 운영되고 있던 사립병원인 대전, 대구병원은 각 의료진 2~3인의 소규모 병원으로 응급실을 운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울산병원의 경우 의료진 54인에 지역응급의료센터로 상황이 많이 다르다. 연 2만명이 넘는 응급환자들이 방문하고 있는데 그들 중 병원을 헷갈려 방문해 필요한 조치를 제때 못 받게 될 경우가 분명 생길 수 있다. 산재병원에서 응급과 관련된 모든 조치가 다 된다면 모르겠지만 현재 계획된 진료과는 18개에다 그 진료과가 개원 후 빠른 시간 내에 다 구해질지, 응급실과 연계 가능할지, 된다면 언제 될지도 모르기에 울산병원처럼 심뇌혈관 질환의 응급대처 및 거의 모든 진료과의 백커버는 어려워 보인다.
응급환자는 119 구급차를 이용하기에 (아마도 병원을 정확히 알고 갈 것이라) 응급의료 혼선이 적을 거라는 내용도 본 듯한데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중증도를 판단하는 KTAS 분류등급 중 중증환자로 보는 3등급 이상의 환자 내원경로를 11월까지 병원 자체적으로 분석해보면 이 중 구급차를 타고 내원한 경우는 35% 남짓으로 나머지 60% 이상은 자차 및 택시 등을 타고 내원하고 있다. 이들이 응급 쪽으로 대처가 가능한 병원을 찾았는데 단순히 이름 때문에 혼선이 와 혹 잘못 방문할 경우, 특히 심뇌혈관 질환 같은 골든타임이 중요한 환자들의 경우는 어떻게 될까.
게다가 울산병원은 시 전체에서 응급 고압산소치료가 가능한 유일한 병원이라 일산화탄소 중독 환자나 산재 사고 환자들이 타지역에서까지 방문하고 있는데 이런 촌각을 다투는 환자들에게 굳이 병원명 때문에 불필요한 혼선을 줘야 할까. 울산병원이 맡고 있는 공공기능 중 하나인 해바라기센터 역시 방문에 문제가 생긴다. 범죄 피해자분들 중 경찰 대동 하에 찾아오는 경우는 55% 정도이고 나머지 45% 가량은 울산병원에 이런 곳이 있는걸 듣고 대부분 혼자 오는데 택시 등 이용 시 ‘해바라기센터’를 가자고 하는 게 아니라 울산병원을 가자고 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은 명칭이 다르면 굳이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는 문제이다. 사실 공단에서 과연 이런 사실들을 모를까 의문이 드는데, 다음 기회에 이 부분에 대해서도 다뤄보도록 하겠다.
임성현 울산병원 이사장